오월의 세수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의 얼굴

by 무엇이든 씁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기온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이 5월이 되었다. 겨우 일주일 사이에 뒷산은 신록의 시간을 지나 녹음이 짙어진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길이 좁아져 있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나뭇가지와 풍성해지는 잎사귀들이 활개를 치면서 우리가 늘 다니는 길이 비좁아져 있었다. 이런 기세라면 다음 주말에는 낫으로 나뭇가지를 치지 않으면 길이 없어질 것이다. 이제 나무의 시간이니 우리가 깨갱해야겠지?


하늘도 좁아져 있었다. 잎이 많아지니 하늘을 가리고, 해가 중천인데도 숲이 어둑어둑하다. 앞으로 나무들은 서로 더 많은 빛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겠지?


그렇게 열대우림 같은 오월의 숲을 헤치고 가는 길에 한 줄기의 빛이 딸에게로 쏟아졌다. 우와! 이번엔 내가 신의 계시를 받는 거야? 저 빛 사이로 딸의 형체가 흐릿해지면서 하늘 위로 빨려 올라갈 것만 같은 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가? 숲은 걷다가 보면 이런 신비한 광경도 일상일 뿐이다.



피천득 시인이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했는데, 시인은 시인이다. 오늘 숲이 딱 그러했다.



https://youtu.be/ofiodzJ7F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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