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꽃의 위엄

뒷집 할머니 텃밭 해설

by 무엇이든 씁니다
파란색이 파밭

저건 뭐예요?

__파에요. 파에 꽃이 핀 거예요!

(눈이 똥그래지며) 파에도 꽃이 펴요?

__그럼요! 거의 모든 식물엔 꽃이 필 걸요!


이런 잘난 척 하는 거 너무 좋다. 특히 세상 똑똑한 친구를 서울촌놈, 헛똑똑이라며 놀려먹는 거 은근히 통쾌하다. 옛날 직장 후배였던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나의 놀릿감이 되고 말았다.


우리 집 주방은 텃밭 뷰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은 밥을 먹으면서 창으로 보이는 텃밭 해설을 덤으로 듣는다. 그런데 파꽃에 놀란 친구는 처음이다. 내 친구 중 가장 젊은 친구(아마 30대 초반, 정확한 나이는 안물 안궁이어서 잘 모름)여서 그런 거 같다. 요즘 아이들이 벼를 본 적이 없어 쌀은 쌀나무에서 난다고 생각한다는데 괜한 말이 아니다.


책에서 배우는 지식과 실제 삶에서의 앎에는 거리가 꽤 있다. 여러 경험을 통해서 일치시키기도 하고, 차이를 확인하면서 그 거리를 좁혀간다. 그런데 점점 그런 기회가 줄어드는 것 같다. 쌀이 마트가 아닌 쌀나무에서 난다고 하는 건 그래도 양호한 건지도 모른다. 생물 시간에 꽃은 종자식물의 번식 기관, 속씨식물의 유성생식기관이라고 배우지만, 그건 책 속의 지식, 책 속에서 쓰는 용어일 뿐이고, 실제 삶에서 만날 기회가 없다.


파꽃을 아는 게 뭐 대수냐! 물론 파꽃 몰라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다. 하지만 파꽃의 모양, 파꽃의 냄새을 알면 삶이 아주 쬐끔 흥미롭고 풍요롭다. 저 하얀 베일을 벗고 피어나는 파꽃의 모양을 보라! 파꽃을 노래한 시인이 많은 것도 바로 그런 것이리라. 파꽃이 피면 파 안은 텅텅 비고 꽃을 떠받치느라 질겨지면서 파는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도 알게 모르게 쓸모있을 지도 모르고 하다못해 똑똑한 친구를 무식하다고 놀려먹을 수도 있다. 파꽃을 아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