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선생님한테 혼났을 때

새가 알을 깨고 나올 것인가

by 무엇이든 씁니다

현관에 들어설 때 표정, 아니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분이 어떤 지를.


기분이 좋을 때는 발걸음 소리부터 다르다. 멀리서부터 엄마, 엄마(하이톤으로 꼭 두 번씩)를 불러댄다. 빨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싶어서 빨리 숨을 삼키고 할 말을 고르느라 입을 씰룩댄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쿵쿵쿵, 땅에다 화풀이를 하는지 발걸음 소리부터 다르다. 엄마를 부르기는커녕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둥 마는 둥 시큰둥하다. 꾹 다문 입은 죽은 조개처럼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오늘 뭐 안 좋은 일 있었어?

음... 선생님한테 혼났어. 그것도 세 번이나!

아... 그래? 많이 속상했겠네.


소위 말하는 범생이, FM으로 살아온 딸이 선생님에게 혼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엔 좀 의외긴 했다. 좀 신선하게 들렸다. 한 번이 아니라 그런 일이 반복되자 뭔가 딸의 세계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심각한 일은 아니다. 떠든다고 혼나고, 따진다고 혼난다고 했다. 전혀 새롭지 않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는(!) 일관성 있는 행보일 뿐.


딸은 궁금한 것이 많다. 궁금한 건 못 참고 묻는 편이다. 한번 꽂히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떤 규범이나 지식을 단순하게 수용하지 않는다. 왜? 왜 그래야 되는데? 따져 묻고 아니라고 생각할 땐 이의를 제기한다. 어른이라고 어려워하고 그런 거 거의 없다. 나이와 지위 등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다. 최근엔 사춘기 언저리답게 반항심 따위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공손하기보다 까칠하게 굴 때도 있다. 아주 거창하게 포장하자면 자신을 감싸고 있는 알을 깨고 나오려는 작은 새로 보일 때가 있다.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교실이라는 집단의 세계를 구축하고 이를 운영하는 선생님에게는 우리 딸은 좀 성가시거나 불편한 존재일 수 있다. 태도와 뉘앙스에 따라서는 버릇없어 보일 수도 있고 반항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서 선생님을 탓할 생각이 없다. 아이의 입장에서 진술한 것만 듣고 판단하기도 어렵고 양육 철학이 다르다고 해서 일일이 컴플레인할 생각은 없다. 아이 교육을 학교에 위탁한 이상 큰 틀에서는 교사를 신뢰하고, 교사의 방식과 교사의 세계를 존중하자는 생각이다. 그 세계가 아이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거나 교실 안에서 공동체적 해결을 기대할 수 없어 SOS 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이런 일상적인 일로 그 세계에 개입할 생각이 1도 없다.


딸에게 주의를 주거나 조심시킬 생각도 없다. 어차피 고분고분 내 말 잘 듣는 애도 아니고. 혹시 너무 엉뚱한 트집을 잡거나 고집을 부리거나, 예의 없이 군다면 모를까, 그런 일은 아닌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데 못하게 할 수도, 못하게 할 이유도 없다. 물론 나도 한낱 나약한 부모인지라 선생님한테 혼났다고 오래도록 힘들어하고, 혼날까 봐 선생님의 눈치를 보거나 주눅 든다면 마음이 무겁고 뭐라도 해야 하나 고민할 것이다. 다행히 딸은 혼나는 일에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다. 선생님의 꾸중이 딸을 낙심시키거나 주눅 들게 하는 것 같지 않다. 잠시 속상해하다가 쿨하게 툭툭 털어버린다. 이쯤 되니 오늘은 무슨 일로 혼났을까 궁금해지고, 선생님에게 혼나고 와서 종알거리는 딸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교실에서 일어난 일은 교사와 아이가 함께 판단하고 해결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도 그렇듯 교사라고 완벽한 존재는 아닐 것이며, 길게 보면 교사도 아이들도 함께 경험하고 정반의 과정을 거쳐 합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딸이 선생님의 어떤 방식이 처음엔 마음에 안 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런 효과가 있더라, 며 스스로 자기 생각을 바꾸는 걸 많이 봤다)


난 그러지 못했다. 학창 시절 내내 선생님들의 편애(당시엔 대놓고 teacher's pet이 가능)를 받아 온 나는 선생님의 과도한 기대와 애정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학교 가는 게 싫었다.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과 선생님의 불합리나 부조리함에도 눈 감고 모른 척했다. 나의 학교 생활은 불편했고,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할 말은 하고 혼나는 딸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어떤 세계는 만들어지고 어떤 세계는 또 깨지고 있는 중이다. 어떤 세계는 함께 만들어지고, 어떤 세계는 함께 깨지고 있는 중이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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