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열두 살의 5.18

by 무엇이든 씁니다

가끔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런 걸 초등학교에서 배운다고? 이런 게 교과서에 나온다고? 놀라곤 한다.


최근에 딸이 4.19 혁명부터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줄줄 외는 걸 보고 놀랐다. 내가 5.18에 대해서 알게 된 건 대학 때였는데...신기했다.


근데 말이야, 난 요즘 교과서에 의심? 의문이 들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듣다 보면 정말 그렇게 다 영웅적이고 위대한 것이었는지 의심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 이후 우리나라가 정말 좋아진 건지도 의문이 든다고 했다.


딸이 배운 민주화 운동의 역사는 피부에 와닿지 않은 듯 했다. 교과서를 집에 가져오지 않아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잘은 모르지만 딸의 말로 짐작하건대 초등학교 사회에서 다루는 민주화운동 역사가 사건 중심이다 보니, 그 배경이나 성과와 한계까지 다루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학교에서도 이런 평면성을 극복하고자 영화(택시운전사)도 함께 보고, 책(오월의 달리기)도 온 책 읽기로 함께 읽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사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부모로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아는 선에서 더 자세히 가르쳐주는 게 좋을까?

아니면 보충 설명이 될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는 게 좋을까?


그러다 보면 나의 생각을 주입하게 되는 건 아닌지 주저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광주가 고향인 친구(나이로는 언니)가 집에 놀러 오기로 했다. 이모가 광주 사람이라고 하니, 딸의 작은 눈이 커지며 이모에게 518에 대해서 좀 물어봐야겠다고 했다.


1980년에 이모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어. 이모 집이 번화가에서 좀 떨어진 외곽, 변두리여서 영화나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장면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어. 하지만 매일 총소리는 들려서 무서웠지. 지금도 눈에 선한 건 엄마가 집에 있는 두꺼운 솜이불을 죄다 끌어내 문 앞에 높이 쌓아놓고 절대 나가지 못하게 했어. 그래도 총소리가 덜 나면 몰래 밖에 나가 보곤 했는데 동네에서 좀 높은 지대에 올라가면 탱크가 지나가는 것도 보이고, 밤에는 불꽃놀이처럼 시가지 쪽에 번쩍하는 게 보이기도 했어. 그렇게 한참 동안 학교도 못 가고 힘들고 답답했었어.”


광주 친구는 대학에 가서 학생회 선배들이 5.18의 실상을 알리러 피해자 사진 전시한 것을 봤을 때 당혹감? 모욕감 같은 걸 느꼈다고 했다. 사진전에는 총에 맞은 피해자의 얼굴도 있었다고. 광주 사람으로서 피해자를 전시함으로써 잔인성, 폭력성만 부각하는 방식의 학생 운동에 심한 회의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당시 광주 사람이라면 대학 가서 운동권으로 직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오히려 자기는 운동권에 거부감이 생겨서 시위에도 한 번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가만 듣고 있던 딸이 물었다. 그때보다 지금이 좋아진 것 같냐고. 민주화 운동 이후 좋아진 거 같냐고 물었다. 친구는 분명히 좋아진 것이 있다고 했다. (평소에 굉장히 시니컬한 친구여서 이렇게 답하는 게 초등학생용 희망주기용 답인지 의심이 들긴 했으나 매우 단호하고 분명했다) 아주 단적으로 광주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광주 사람들은 폭도, 빨갱이 이미지가 강해서 대학 때 남자 친구 부모님이 자신이 광주 사람이라고 사귀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딸이 큭큭거리며 웃었는데 지금 싱글인 이모가 남자 친구를 사귀던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것이 신기했나 보다) 지금은 적어도 광주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많이 사라졌다면서 그 지점이 광주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가 더 좋아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대목이라고 했다. 당장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안 좋아진 것처럼 보여도 조금씩 좋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5.18에 대해서 딸이 직접 들은 첫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영웅적인 서사는 없지만 적어도 교과서나 영화에서 보는 것보다는 내가 아는 사람이 겪은 역사, 피부에 와닿는 생활 속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딸의 생각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는 더 이야기해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내 생각의 변화가 좀 있었다. 처음엔 아이가 궁금해하고 갈증을 느끼는 부분을 어떻게 더 가르쳐줄까,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워줄까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직접 가르치고 채우려 하기보다는 비워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이런 저런 방법으로 스스로 궁금한 것을 찾아가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그런 면에서 학교는 모든 지식을 주입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궁금증을 더 키워가는 게 더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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