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미쳤다

미나리의 시간

by 무엇이든 씁니다

너만 보인단 말이야. 눈을 감아도 너만 보인단 말이야!! 여기서 ‘너=미나리’다.


미나리가 원래 그런 줄 알았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매운탕 집은 미나리를 산처럼 수북하게 쌓아주는데, 난 그 미나리만 건져서 먹는다. 그렇다고 미나리를 일부러 사서 챙겨 먹고 그러진 않았는데 이번에 야생 돌미나리를 만나 향긋하고 아삭아삭한 식감에 제대로 반하고 말았다. 돌미나리는 물미나리보다 향이 강하고, 야생에서 자란 거라 더 그럴 것이다. 미나리는 무려 3번의 세로토닌을 분비시킨다. 미나리를 찾아 이리저리 걸어 다닐 때, 뜯을 때, 씹을 때. 뜯을 때 코를 스치는 향 다르고, 씹을 때 입안에서 퍼지면서 혓바닥 맛 봉오리로 느끼는 향이 다르다.


세상에! 어쩜 좋으냐!


비 온 뒤 수북하게 올라온 미나리를 뜯어서 엄마에게 택배로 보냈다. 엄마는 세상에서 미나리가 제일 좋단다. 지지난주까지는 쑥이 세상에서 젤 좋다고 했다. 엄마가 미나리를 동생에게 좀 보내주라고 했다. 엄마의 제1 고민은 동생에게 어떻게 맛있는 거 먹일까?, 엄마의 세상 제1 기쁨은 동생이 뭘 맛있게 먹었을 때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마는 동생의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이고 지대하다.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에게 미나리 한 단을 요렇게 묶어서 주면서, 내가 너무 좋아해서 아끼는 건데 영광으로 알라면서 온갖 생색을 다 낸다.


동생이 원체 입이 까다로워서 그렇다. 맛없으면 일절 손에 안 대고, 맛있어도 많이 먹지도 않는다. 늘 토실토실한 나와 달리 동생은 늘 깡 말랐다. 동생이 그냥 입이 짧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언젠가 동생 집 갔더니 욕실에 칼과 칼 가는 숯돌이 있어서 뜨아... 한 적이 있다. 일본 여행 갔다가 사온 명품 칼이라고 했다. 아니, 입도 짧은 애가 뭘 얼마나 해 먹겠다고 명품 칼을 사 왔나 싶었는데 그걸로 직접 밀가루 반죽을 해서 칼국수를 썬다나 뭐래나. 만두를 좋아해서 만두 잘한다는 데 가서 만두를 사 먹었는데 그것도 별로라서 만두피도 직접 만들어서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나 뭐래나. 그 얘기 듣고 동생은 입이 짧은 게 아니라 미식가적 성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아무거나 잘 먹는 동생이 아니라서 뭘 보내줄 때도 망설이게 되는데 엄마의 간절한 부탁이라 보내줬다. 그날 저녁,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미나리 미쳤다!


끓는 물에 넣었다 한번 뒤집어서 빼는 느낌으로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이것이 바로 천상의 맛이로다


최고의 찬사였다. 말수도 적고, 나랑 달리 인사치레 성 말을 하지 않는 동생인 걸 감안하면 미나리는 제대로 미친 게 맞다. 그새 나도 엄마에게 전염? 세뇌됐는지 동생이 뭘 맛있게 먹었다고 하니 기분이 이렇게 좋을 수가. 이 말을 전해 들은 엄마는 당연히 기뻐했고, 그 기쁜 마음이 삼 일간 지속되었다. 엄마는 내가 나가서 재미있게 놀고 들어올 때, 동생이 뭘 맛있게 먹었다고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데 전자는 늘인데, 후자는 아주 간헐적이라 엄마가 아주 애가 탄다. 그 어려운 일을 미나리가 해냈다. 상 받을 만하다.


덧. 영화 미나리 아직 안 봤음! 보나 마나 울 엄마가 같은 할머니 나올 거 같아서~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