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맛 궁금해

제철 딸기의 맛

by 무엇이든 씁니다

딸기가 이런 맛이었어?


텃밭에 드나들고 뭘 좀 키워보겠다고 흙에서 깨작거리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미각의 세계가 열린다. 뭘 새로운 것을 먹게 되는 게 아니라 알던 것의 새로운 맛 혹은 원래의 맛을 알게 된다.


흙에서 바로 뽑아서 소매 끝에 쓰윽 문질러서 먹는 당근이 그렇고, 꼬부랑 할머니처럼 구부러진 오이가 그렇고, 속절없이 옆구리 터져 버리는 토마토가 그렇고, 손 대기 무섭게 물러 버리는 딸기도 그중 하나다. 그 맛들은 미지의 영역을 침범하여 휴면 상태의 감각을 깨운다.



하우스 재배로 요즘 딸기는 이른 봄(점점 앞당겨져서 요즘엔 겨울)이 제철이지만, 노지에서 자라는 딸기는 지금이 제철이다. 동네 산책 나갔다가 노지 딸기 한 줌을 얻어왔다. 지나가다 딸기를 심으셨네요, 하고 알은체를 했을 뿐인데 횡재했다.

근데 어쩜!

크기도 제각각

모양도 제각각

색깔도 제각각

어쩜 맛도 제각각일까.

자연 상태에서 자란 제각각의 딸기를 보면 균일한 크기와 모양, 색깔, 강도와 당도까지 일정한 품질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화학적, 물리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다.


노지 딸기는 그런 상품성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그럼 노지 딸기는 무슨 맛으로 먹는가? 노지 딸기는 상품성 대신 작품성 있는 독립영화에 가깝다. 자본에 의지하지 않고 해와 바람과 비에 의지하여 만들어진 날것 그대로의 맛을 선사한다. 그 맛은 시중 딸기와는 전혀 다름 유니크한 맛을 선사하는데 그 유니크함은 딸기 하나에 200~300여 개씩 박혀 있는 씨에서 온다. (딸기 씨를 빼서 하나하나 센 사람이 있더라. 그 덕에 대략의 개수를 알게 됨~ㅎ)


하우스에서 곱게 자란 딸기는 과육이 단단한 대신 씨가 도드라지지 않지만, 노지에서 험하게 자란 딸기는 육질이 무른 대신 씨가 깊이 박혀 있고 단단하다. 딸기를 입에 넣으면 과육은 씹기도 전에 스르르 허물어지지만 그 안에 씨들이 사방으로 튀어나온다. 그 씨를 톡톡 씹어 먹는 맛이 별미고 재미다. 특히 씹어먹는 식감을 좋아하는 딱 내 스타일이다.


그 식감을 즐기며 딸기를 입에 넣다 보니 순삭이다. 울 엄마는 좋은 건 자식부터 주지만 난 맛있는 건 내가 먼저 먹고 남는 걸 딸에게 주는데 오늘은 남는 게 없다. 개코라 미묘한 냄새도 잘 캐치하는 딸이 오기 전에 증거 인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