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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un 07. 2021

집 짓고 살아보니 어때요?

보리수 나무 아래의 깨달음

작년에 심은 보리수나무에 열매가 달렸다. 우리 집 나무에서 처음으로 맺은 첫 열매다.


나무를 심으면 그 해에 바로 열매가 달리는 게 아니란 걸 집 지으면서 알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몸살도 앓고 새 땅에 뿌리를 내리느라 고단하기 때문에 심은 해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최소한 한 해, 두 해를 잘 넘기고 뿌리가 잘 안착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한다. 집에 자두나무, 감나무, 앵두나무, 보리수나무가 한 그루씩 있는데, 다른 나무들은 아직인 가운데 보리수 나무가 제일 먼저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귀고리 같이 달려있는 보리수나무 열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새집에 이사 오면 새집 살림, 주위 환경, 이웃과의 관계에 적응하게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로서 집 짓고 새 집에 산 지 꼭 1년이 되었는데, 4계절을 살아보니 이제 좀 자리 잡은 느낌이 든다.


집 짓고 살아보니 좋냐는 질문을 1년 동안 정말 많이 받았다. 대답은 그때그때 조금 달랐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정돈된? 답변이 있다. 아주 너무 너무 행복해 죽겠어, 매일 매일 너무 좋아, 라고 말해서 사람들이 막 부러워하게 만든 다음 곧 실상을 말해준다.

실은,,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다고.

세상 일이 좋을 수만은 없는 거 같다고.

좋은 게 있으면 반드시 안 좋은 게 있는 법이라고.

좋은 것만 쏙 빼내서 취할 수도 없고,

안 좋은 것만 쏙 빼내서 제거할 수도 없다고.

두 가지는 늘 세트라고.


그래도 1주년이니까 알흠답게 좋은 것부터 말해보자면,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 늘 잔잔하게 반짝이는 것이 있다. 오늘도 마당에 나갔다가 대롱대롱 귀엽게 매달린 보리수 열매를 발견했고, 남편이 봄에 씨뿌린 카모마일이 무성히 자라서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카모마일 꽃차를 만들려고 꽃이 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꽃이 피어보니 계란 후라이 마냥 노른자+흰자 꽃이 아니고 온통 노란색이어서 이건 뭔가 찾아보니 꽃차보다 염색에 주로 쓰인다는 다이어스 카모마일로 밝혀져 크게 낙심하는 중이다) 아무튼 땅에 한층 더 가까워진 일상은 감히 축복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 어디 여행도 못 가고 집에 유폐될 수밖에 없었던 지난 1년(그리고 앞으로 최소 1년), 유난히 비도 많이 오고, 눈도 많이 왔던 지난 1년 동안 산과 들이 가깝고, 마당 있는 집에서 산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작은 땅이 있으니 뭐라도 심을 수 있어서 좋고, 흙 만지고, 흙 밟으면서, 흙 냄새 맡으며 살 수 있어서 좋고, 마스크 없이(!!!) 산으로 들로 마음껏 돌아 다닐 수 있어 좋고, 우리 딸과 반려견 여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어 좋고, 남편이 마음껏 불 피울 수 있어 좋고,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 좋고, 사방에 막힘이 없어 달과 별의 궤도를 매일 따라갈 수 있어 좋고, 철마다 저절로 피는 들꽃으로 눈호강하고, 철마다 다른 새들의 지저귐으로 귀호강하고(최근엔 그 귀하다는 파랑새와 꾀꼬리도 보았고!), 제철 나물을 해 먹으면서 입호강하고, 지금은 산책할 때마다 딸기와 앵두 서리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매일 자연의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이렇게 좋다는 말만 늘어놓으면 재미없지. 역시 인생엔 공짜가 없다. 비가 오면 비설거지를 해야 하고, 눈이 오면 빠르게 나가 눈을 쓸고 치워야 한다. 겨울엔 수도 계량기가 얼지 않게 관리해야 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쓰레기 봉투를 들고 멀리까지 나가야 한다. 아이 학교까지 라이드해야 하고, 샴푸 하나 사라 가더라도 차로 이동해야 한다. 이웃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아이들도 함께 놀 수 있고 좋을 때가 많지만,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는 일도 많다. 서로 비교하기도 하고, 비교 당하기도 한다. 궁금하지 않은, 몰라도 될 일을 알게 되는 일도 피곤할 때가 있다.


부정성은 예고 없이 찾아와 긍정성에 정면으로 맞선다. 나를 뒤흔들고, 파헤친다. 나의 이기심, 욕심, 인내심 등 꼭꼭 숨겨놓은 마음의 바닥을 드러나게 만들고, 내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하게 만든다. (처음엔 이런 내 자신이 너무 낯설고 싫지만 오히려 나중엔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편해진다) 그동안 어떻게 하면 부정성을 제거하고 긍정성만 누릴 순 없는지 골몰했지만 1년 살아본 결과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함께 어울려 살기로 했으면 그에 대한 긍정성과 부정성을 함께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집을 짓고 산다는 건(어쩌면 인생이라는 건) 긍정성과 부정성이 공존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 집 지은 지 꼭 1년,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얻은 나의 깨달음이다ㅎㅎㅎ


잘 여문 보리수 열매의 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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