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훈민정음을 외우고 있고

by 무엇이든 씁니다

아침에 딸이 하여가와 단심가를 흥얼거리더니만 갑자기 훈민정음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걸 외우고 싶다면서.


그걸 왜 벌써부터 외워?


나는 암기를 너무 싫어하고 못한다(못해서 싫어할 수도). 노래 가사도 제대로 외우는 게 없어서 노래방 없으면 노래 한곡을 제대로 못 하고, 전화번호도 내 거랑 남편 거만 외우고 아직 딸 전화번호는 못 외운다. 그러니 주입식으로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달달 외우기였던 학교 공부가 정말 안 맞아서 학교도 겨우 겨우 다녔던 터라 벌써부터 훈민정음을 외운다고 하는 딸이 이상했다. 그니깐 그걸 왜 외우는 건데?


멋있잖아. 알쏭달쏭한 고어들도 재미있고.


엉? 멋있다고? 재밌어서 외운다고? 나에게 훈민정음, 용비어천가는 그냥 달달 외우는 거였지, 어떤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저렇게 재밌어서 외우는 건 얼마나 좋은가. 좋아서 하는 건 또 얼마나 재밌을까. 뜻은 나중 문제고 달달 외워서 애들 앞에서 잘난 척 하는 딸의 모습이 보일 듯 하다.


사맛디 아니할세ㅋㅋ

홀베이셔도?ㅋㅋ

이 말 너무 재밌지 않아?

큭큭큭


그렇게 딸이 아침 식탁에서 갑자기 훈민정음을 외우면서 쓰기 시작했고, 나도 따라 쓰기 시작했다. 딸이 재밌다고 해서 그런가 정말 귀엽네. 글자 모양도 귀엽고, 쓰다 보니 글자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도 막 느껴지고. 그래서 다들 필사를 하는 건가. 오랜만에 손글씨를 써서 그런가, 한 글자 한 글자 몸에 새겨지는 느낌도 들고. 세상 온갖 게 재밌다는 딸 때문에 안 하던 짓을 하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오랜만에 손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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