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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un 11. 2021

제발 살아서 보자. 응?

배롱나무는 살아있다

밤새 빗물을 잔뜩 흡수한 식물들이 더 진한 초록, 더 진한 밤색이 되어있다. 그 사이에 뭔가 특별하게 반짝거리는 게 있다.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에 얼어 죽었다고 생각한 배롱나무가 겨우 겨우 살아남아 새순을 낸 것이다. 짜잔, 죽은 줄 알았지?



우리가 기다리고, 애태우고, 체념하고, 다시 희망하다가 다시 포기했던 나무에 새순을 보자 울컥했다. 아직 잎을 활짝 펼치지 전이라 조심스러웠지만 분명히 새 생명이었다. 아기가 엄마의 좁은 경도를 빠져나와 아직 눈을 못 뜨고 이 세상 공기로 숨을 고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썰미 좋은 남편이지만 바쁜 아침에 못 보고 지나쳤을 거 같아서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이야!라는 짧지만 깊은 감탄사가 돌아왔다.


이사오자마자 뒷집 할머니의 배롱나무를 보고 우리도 배롱나무를 심자고 했었다. 작년 가을 놀러 온 친구에게 배롱나무를 사달라고 해서 심은 배롱나무였다. 지난달, 뒷켠에서 만난 할머니가 배롱나무가 얼어 죽었다며 사형선고를 내렸었다. 그때 난 도저히 보낼 수가 없었다. 나의 간절함 때문은 아니겠지만 반쪽은 살아남았고, 지금은 잎이 무성해지고 있는 중이다. 곧 붉은 꽃이 피겠지.


우리 배롱나무에는 그렇게 간절하지 못했다. 주로 따뜻한 남쪽에 심는 나무인데 괜히 욕심을 부렸네, 볕 잘 드는 자리로 옮겼는데 괜히 옮겨 심었네, 월동준비를 잘해주었어야 했는데 소홀했네, 그저 후회 투성이었다. 나무 사준 친구 보기 미안해서 어쩌지, 새순이 돋지 않아 연락도 못하고 있었다. 남편이랑 저 자리에 뭘 심네 마네 하면서 빠르게 다른 대안을 찾고 싶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전문가에게 최후 진단을 받아보고 싶어서 자주 가는 동네 농원 사장님께 여쭈어보았다.


__배롱나무가 지금까지 새순이 안 나면 죽은 거지요?

__아니요. 조금 더 기다려보세요. 나뭇가지는 죽었어도 나무줄기는 살아있을 수도 있어요. 나무줄기를 이렇게 손톱으로 살짝 긁어보세요. (시범) 보세요! 여기가 초록색이면 아직 죽지 않은 거예요. 뒤늦게라도 새순이 돋을 수 있어요.


그렇게 나무줄기에서 초록을 보았고, 그 후로도 한 달 남짓 흘렀다. 6월이 되자 사실상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그냥 뽑아버리지만 않고 있을 뿐이었다. 근데 이렇게 살아났다. 아니 죽은 적이 없다. 그 큰 추위와 폭설에도 기어코 살아남아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진득하게 나무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낙심하고, 체념하고, 포기하던 시간들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살아있음은 이렇게 감동이구나. 살아있는 배롱나무를 보고 있노라니 얼마  우리 집에 다녀간  친구가 생각났다. 1  우리 사회에  충격을  사건을 겪어낸 친구에게 따뜻한    해주려고 집에 불렀다.  사건은 까맣게 잊고    함께 일하던 모습처럼 웃는 낯으로 시시컬렁한 농담도 하고 신변잡기를 늘어놓으며 사는 이야기들을 했다. 그리고 서울로 가기 전에 신선한 바람이나 쐬어주러 데리고  동네 뒷산에서 친구는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죽고 싶다고 했다. 너무 힘들었을, 그리고 현재 진행형으로 힘든 친구를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마땅한 말들이 생각나지 않아서 같이 주저앉아 울었다. 리고는 겨우 튀어나온  마디


우리 살아있자. 살아서 이렇게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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