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과 결과
비릿하다. 집에서는 그나마 덜 한데 밖에 나가면 사방천지에 밤꽃 냄새가 진동을 한다. 밤꽃은 생긴 모양도 그렇고, 냄새도 환영받지 못한다. 물론 사람 기준에서 그렇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다 이유가 있다. 밤꽃은 생명의 생생한 현장이다. 밤꽃이 비릿한 냄새를 내는 것은 더 많은 벌을 꼬이기 위한 나름의 치열한 생존 전략이다. 그니깐 밤꽃 냄새의 목표는 우리 인간이 아니라 벌이다. (하긴 모든 꽃들이 그러하다) 벌들이 수꽃의 꽃가루를 암꽃에 부지런히 옮겨 발라야 암꽃이 수정이 되고, 우리가 아는 그 밤송이로 커나갈 수 있다.
밤은 좋아하면서 밤꽃 냄새를 질색팔색 하면 안 된다. 밤을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냄새의 이유, 냄새의 목표를 알면 덜 싫어진다. 하지만 현대 도시에서는 생산과 소비, 과정과 결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완전히 분리되면서 알 기회가 사라졌다. 예전에 어른들이 요즘 초등학생들이 쌀이 쌀나무에서 나는 줄 안다고 큰일이라고 했다는데 내가 볼때 쌀나무는 그래도 양반이고 이제는 쌀이 마트에서 난다고 이상하지가 않다. 상품화된 결과만 쏙 취하다 보니 과정, 과정의 어려움, 과정의 치열함따윈 알길이 없다.
소위 그린벨트로 불리는 도농복합지역에 살다 보니 먹거리의 과정과 결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관련 감각들이 재구조화되고 있다. 밤꽃의 비릿한 냄새에 나도 모르게 코를 찡긋할 때마다 다시 생각한다. 지금 맛있는 밤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밤꽃이 열일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