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높이
잠실 롯데캐슬 골드인가, 암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이 집을 공개했다. 여기 살면 거실 창문에서 새가 지나가는 것도 볼 수 있다고 자랑했다. 우연히 그 유튜브를 보면서 새의 높이에서 새를 보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웬걸, 우리는 새를 안방에서 본다(자랑 맞음). 눈 좋은 남편은 맨눈으로 나무에 앉은 새를 본다. 눈이 나쁜 딸과 나는 망원경으로 본다.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싶어서 새 도감을 뒤적이고 새 도감에서 본 것을 확인하려고 다시 새를 본다. 그게 요즘 우리 주말 일상이다.
뒤에 작은 산이 있기로서니 집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새가 얼마나 다양할까 싶지만 정말 다양하다. 참새와 직박구리, 까치, 물까치, 까마귀, 제비, 멧비둘기는 뭐 매일이니까 자랑거리도 안 되고 가끔 보는 찌르레기, 지빠귀, 곤줄박이, 박새, 높이 나는 황조롱이만 해도 신기한데, 얼마 전에는 노래에나 나오는 줄 알았던 뻐꾸기, 파랑새, 꾀꼬리까지 보았다.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파랑새는 꽤 자주 보이고, 꾀꼬리는 딱 한번 보았다.
욕망은 만족을 모르는 법. 꿈이 점점 커진다. 남편은 이제 매가 보고 싶다고 했다. 에이, 매가 깊은 숲 속에 살겠지, 이런 데 살겠어? 라며 비웃었지만, 거짓말같이 정말 매가 나타났다.
새 보러 나가자고 일요일 아침부터 딸과 나를 조르던 남편은 우리가 늑장을 부리는 사이 혼자 나가서 매를 봤고, 아주 흥분해서는 우리에게 전화를 하고, 사진을 보내면서 빨리 나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그날따라 보고 있던 책을 끊을 수 없었던 딸아이는 미적거렸고, 조급한 남편이 집으로 와서 우리를 베란다로 데리고 나갔다. 과연 매였다. 다행히 우리 보란 듯이 그 자리에 가만 앉아 있었다. 나중에 도감을 찾아보니 우리가 본 새는 매가 아니라 매과에 속한 ‘해 호리기’라는 새였고 멸종위기종 2급의 보기 드문 새였다.
이거 실화냐? 보고 싶다고 말만 하면 나타나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가 못 보았을 뿐, 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 봐도 몰랐을 뿐, 혹은 거기에 그런 새가 있다고 믿지 않았을 뿐 새는 원래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보겠다고 보니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니깐 새는 저 높이, 저 멀리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비싼 초고층 롯데캐슬 골드에 살지 않아도(살지 못해도) 보겠다고 보면 보이는 곳,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새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