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의 등기부등본 나온 날
그렇게 땅땅하더니 드디어 땅을 샀다. 있는 돈 없는 돈, 요즘 유행하는 영혼까지 다 끌어모아서. 이제 우리 땅땅거리며 사는 건가?
대지 200평. 여기까지 들으면 꽤 그럴싸하다. 땅을 샀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지주가 된 걸 축하한다며, 부럽다며 한 턱 내라고 했다. 그 200평이 깔끔하게 다 우리 땅이면 지주라고 불려도 사양하지 않고, 거하게 한 턱도 내겠다만 사정이 그게 아니다. 땅과 관련한 문제들도 여전히 남아있고, 그 땅을 또 1/3로 쪼개서 분할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지주라는 말은 극구 사양하고 있다.
부동산에 의하면 원래 세 사람이 빌라를 개발할 목적으로 함께 산 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입도로의 문제로 개발할 수 없게 되면서 땅을 살 때 받았던 대출 이자와 세금이 쌓여갔고, 이 돈을 내지 못해 은행과 세무서에 압류를 잡히게 되면서 다시 되팔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런 땅을 우리가 사게 된 것이라고 한다. 압류도 풀고, 도로에 대한 권리관계를 정리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4월 말에 시작했는데, 땅에 대한 토지 등기부등본이 나온 게 6월 초였다.
땅은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내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까? 모르겠다. 살아봐야 알겠다. 내 사주에는 돈이 없다고 일찍부터 믿어버린 탓에, 감히 부자가 되는 꿈을 꾸어본 적도, 피나는 노력을 해본 적도 없으니 이번에 땅을 산 것이 단언컨대 내 인생 가장 큰 쇼핑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일단 세 사람이 공동지분으로 샀기 때문에 ㅇㅇ와 2인으로 된 등기부등본*이 나왔다. 나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등기부등본에 자기 이름을 올린 세 가구의 대표들은 좀 달랐나 보다. 땅 가진 자들끼리 자축하며 조촐한 축배를 들었다. 등기부등본에 자기 이름을 올린 남편은 숙취에도 불구하고, 아침잠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새벽 댓바람부터 자기 땅이 잘 있는지, 땅 주인이 된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러 갔다. 그리고 세 가족이 함께 있는 단체 카톡방에 이런 글을 남겼다.
*등기부등본은 부동산에 관한 권리 관계를 적어놓는 장부로 토지구입 전과 부동산 등기 후 꼭 열람해야 하는 문서이다. 추가적으로 잘 분석해보면 권리 관계 외에 부동산에 역사와 각종 변화를 알 수 있다.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열람, 발급 가능하다.
우리 땅에 와봤는데, 암컷 고양이가 두 마리의 새끼를 키우고 있고, 마당과 뒷산에는 달개비가 지천이더라고요. 옆집 징크 사장님과 인사하고, 뒷집 과수원 어르신과도 인사했어요."
'우리 땅'이라고 했다. 우리 땅이 되고 나니 풀 한 포기, 고양이 한 마리도 예사롭지가 않은 모양이다. 이처럼 땅에는 동물도 살고 식물도 살고 사람도 산다. 땅 주인이 된다는 것은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이웃이 될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궁금하면서도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미우나 고우나 이웃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집 입구에 자리한 2층 벽돌집 주인은 지붕 소재로 쓰이는 징크를 취급하는 사업을 하신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우리는 그분을 '징크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한때 잘 나가던 유명 탤런트 김ㅇㅇ이 징크 사장님 조카라고 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걸 자랑할 정도니 한참 TV에 나올 때는 조카 자랑을 얼마나 했을까.
우리 땅에서 놀던 고양이들을 옆집에서 돌보는 고양이로 짐작된다. 우리 옆집에는 고양이 러버가 산다. 미용실 원장님인 옆집 아주머니가 이 동네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캣맘 역할을 하는 듯하다. 그 집에 드나드는 고양이만 열댓 마리 된다. 이후 우리는 그 집을 고양이집, 그 집주인인 할머니를 '고양이 할머니'라고 부른다.
우리 땅 마당에 드리운 밤나무는 뒷산 과수원 할머니가 시집오면서 심은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수령이 무려 60년이 넘은 것이다. 폐백 할 때 아들, 딸 많이 낳으라고 밤, 대추를 던져주는 우리네 풍속을 생각할 때 자손(특히 아들) 많이 나으라고 심었던 게 아닐까. 뿌리는 우리 땅에 두고 있지 않지만 무성한 가지가 우리 땅으로 뻗어 있어서 집을 지으려면 가지를 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우리의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밤나무에 상당한 애착을 보이셨다고 한다. 앞으로 이 밤나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우리 땅 뒤로는 아담한 집이 한 채 있는데 할머니가 한 분 사신다. 아드님이 남양주에 사시는데, 직장은 은평구여서 주중에는 여기에서 출퇴근하신다고 한다. 심심할 뻔한 이 동네에서 쨍한 빨간색 지붕이어서 나는 그 집을 빨간 지붕 집 할머니라고 부른다. 그린 게이블의 앤(Anne of Green Gable)처럼.
요약하면 징크 사장님, 고양이 할머니, 과수원 할머니, 그리고 뒷집 빨간 지붕 할머니가 우리와 경계를 마주하는 이웃이다. 지금이야 서로 덕담도 주고받으며 웃는 낯을 하고 있지만, 살다 보면 텃세도 있을 거고, 경계 문제로 얼굴 붉히는 일도 있을 것이다. 땅 주인이 되면 땅에 대한 권리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 잠재된 분쟁 가능성도 함께 따라온다. 팔자에도 없던 땅주인으로 살아갈 날이 기대 반 걱정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