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함께
앗, 숙제를 깜빡했다. 예나 지금이나 숙제는 참 하기 싫다. 차일피일 미루는 것도 어쩜 그대로냐. 한밤 중에 못한 숙제가 생각나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내 전문분야랄 수 있는 벼락치기를 시작했다. 첫 질문은 우리 가족 소개하기. 나, 남편, 딸, 반려견 이렇게 넷의 기본적인 신상을 대충 때려 적고, 마지막에 '우리 가족은 ㅇㅇ' 한 마디로 요약을 하고 싶은데, 그 한 줄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갑자기 딸아이가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우리 가족은 모두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딸은 가끔 뼈 때리는 말을 한다. 정말 각색 하나 안 하고,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적었다. 딸은 이렇게 말하고 친절하게 부연설명까지 했었다.
"윤하네 집은 모두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저녁밥도 다 같이 모여서 먹고, 영화도 넷이 같이 보러 가고, 운동도 같이 하러 가거든. 근데 우리는 다 따로야. 밥도 따로 먹고, 영화도 따로 보고, 음악도, 여행도 다 따로야."
그렇다. 일단 나와 남편은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이 완전히 다르다. 10년을 넘게 살면서도 우리는 서로 맞추면서 가족 집단의 정체성을 가지기보다 좋은 말로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면서 육아에서는 협력하는 육아공동체로 살아왔다. 딸아이는 취향이 다른 우리 둘 사이에서 이중생활을 하고, 우리 둘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각각의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모습이 한국적 가족 주의 이 모습과는 거리가 좀 멀지도 모르겠다. 밥도 각자의 배꼽시계에 맞춰 각자 먹는 편이다. 주로 내가 먼저 먹고, 남편은 늦게 먹는 경우가 많은데 딸은 나와도 먹고 남편이 먹을 때도 거든다. 영화 취향은 더욱 안 맞는다. 남편은 블록버스터급 영화나 마블 영화를 저녁에 극장에서 보고, 나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점심시간에 극장에 가서 보거나 집에서 혼자 TV로 보는 관계로 같이 영화 본 기억이 거의 전무하다. 여행 스타일도 달라서 남편과 딸은 룰루랄라 하는 여행을 가고, 나와 딸은 부지런한 여행을 한다. 남편과 딸은 야구장에 같이 가고, 나와 딸은 콘서트장에 간다. 이런 행태를 한 마디로 하면 '따로 또 같이'다. 이렇게 늘어놓으니 함께 사는 게 신기할 정도다.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산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제각각인 생활이 모두 한 공간인 거실에서 이루어진다는 거다. 인도나 베트남 등의 소위 말하는 개발도상국가에 가면 차선이나 신호등이 없지만 신기하게 사고가 안 난다. 우리 거실도 매우 무질서해 보이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다. 우리가 사는 집의 거실이 워낙 넓어서 가능하기도 했다. 한편에 TV와 소파가 있고, 한편에 오디오와 피아노가 있고, 또 한편에 서재와 책상이 있다. 그리고 거실 한가운데 긴 테이블이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넓은 거실을 적었다.
그리고 각자 원하는 것을 적었다. 남편은 집 짓겠다고 나선 사람의 기본인 로망을 죽 늘어놓았다. 벽난로와 툇마루가 있는 중목구조의 집을 좋아한다. 남편은 불 피우고 싶어서 집을 짓는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불 피우고 싶어 한다. 마음속에 불태울 것이 많나 보다. 딸아이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열매를 따먹을 수 있는 나무가 있는 마당을 원한다고 했다. 딸아이가 앵두나무와 오디나무가 꼭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벌레가 가장 많이 생기는 나무라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로망 같은 건 없다. 집이 훨씬 더 황홀한 인생을 약속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여름이를 풀어놓을 수 있고, 빨래를 널 수 있는 적당한 마당이면 된다.
상상은 자유다. 하지만 상상을 다 담을 수 없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땅도 작고, 예산은 더 적다. 어떤 것은 포기하고 현실에 타협해가야 할 것이다. 건축가들은 이미 우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 집에 와서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우리의 그로 적어낸 숙제 검사도 했을 것이다. 이제 건축가들에게 공이 넘어갔다. 과연 어떤 그림이 나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