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16. 2020

고통

집 짓다가 이혼하는 줄

여름이다. 여름엔 엿가락 늘어지듯 늘어져 쉬어야 하는데 우리는 분주하고 긴장이 팽팽한 상태였다. 건축가들도 여름휴가를 마치고 막바지 작업 중이라고 했다. 세 집이 함께 모이는 미팅 날짜 잡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휴가 일정이 있었고, 2호 집은 출산 직후라 먼 길을 나설 형편이 아니었다. 각자 형편에 맞게 미팅을 하기로 했다. 3호집은 직접 안성으로 내려가 건축가들과 미팅을 하고, 2호 집은 온라인과 전화로 소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휴가 가는 길에 카톡으로 도면을 받아서 휴대폰으로 보고 있었다.


3차 평면도_다이닝룸이 주방 안쪽에 있는 것이 특징(2019.8.15)


여전히 도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실을 삥 둘러서 툇마루가 생긴 건 좋았다. 남편이 로망이라니까 하나쯤은 로망의 공간이 있는 건 좋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집의 기본인 네모난 집이 아니었다. 각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주방을 거쳐서 다이닝룸에 들어가야 하는 것도 불편해보였고, 다이닝룸이 옆집과 마주 보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밥 먹을 때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상황은 사이가 좋더라도 싫었다. 최대한 서로 간섭이 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피드백하고 수정안을 기다리고 있는데, 엉뚱한 문제가 불거졌다. 세 집이 각자 개별적으로 건축가들과 소통을 하면서 서로의 상황이 제대로 공유가 안 되다보니 진행 방식에 대한 이의제기가 있었다. 그럴 수 있다. 나도 다른 집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 건지, 도면 수정은 얼마나 요구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던 차였다. 그러다 오해가 쌓였다. 쌓인 오해가 쉽게 풀릴 성격이 아니었다. 한두 달 진행되었던 설계가 엎어지고 새로 시작되면서 지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각 집의 설계가 땅의 분할과 다른 집의 프라이버스에 긴밀하게 영향을 미치면서 서로 예민해지고 신경이 곤두서졌을 것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이 뚝, 하고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긴장 상태를 아슬아슬하게 바라보던 나도 나가 떨어졌다. 오해는 풀어졌지만 내 심신은 이미 미약해질대로 미약해진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은 평온을 되찾았지만,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회복이 쉽지 않았다.


4차 평면도면_주방의 위치가 바뀌었다


그만 몸에 병이 나고 말았다. 내색도 못하고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오르다가 어딘가는 터져나올 줄 알았다. 결국 작은 수술을 하게 됐고, 한 여름에 수술을 해서 그런지 여름 내내 잘 아물지 않아 작은 수술에 걸맞지 않은 고통에 시달렸다. 몸이 불편하니 말도 편하지 않았다. 애꿏은 남편에게 짜증이 쏟아졌고, 웬만해서 참는 남편도 참지 못했다. 참 많이 다퉜다. 왜 집을 짓자고 해서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원망이 하늘로 솟구쳤다. 중간에서 딸아이도 많이 힘들어했다. 내가 평소에 장난반 진담반으로 이혼하면 누구랑 살거냐고 물었을 때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했던 딸의 입에서 그렇게 싸울 거면 이혼하라는 말까지 나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딸아, 너무 걱정하지마. 우리는 이혼할 수가 없단다.
집 짓다가 이혼하면 그 처리가 더 골치가 아플 것 같아.
차라리 집을 짓고 말지.  
 

실제로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고, 내 마음이 저랬다는 것이다. 집은 마음에 안 들고, 속은 시끄럽고, 몸은 병이 나고, 가정은 파탄날지도 모르는 지경이다. 하지만 우리는 헤어질 수 없다. 적어도 집을 짓는 동안에는 이혼할 수 없다. 이혼을 해도 집을 다 짓고 (팔고) 나서 해야 한다. 이 무슨 슬픈 화목이란 말인가. 잘 살아보겠다고 집을 짓다가 대판 싸우고 이혼하게 생겼는데, 이혼하는 것이 너무 복잡해서 잘 살아야 하는 아이러니라니... 뭐 이건 한 편의 블랙코미디인가요. 웃픈 현실이다. 됐고, 결론만 기억하자. 일단 집은 다 짓자. 그리고 난 다음 생각하자.   



한 여름에 내 마음이 한 겨울인 이유


이전 07화 숙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