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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16. 2020

그래서 씁니다

집을 기록하다


 집 짓는 과정을 글로 써보는 거 어때요?


집을 짓는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집 짓는 과정을 글로 써보라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 우리 집을 설계하고 있는 정 소장님도 권했고, 시공 소장도 몇 번씩 말했고, 친구들도 집 짓는 과정을 보고 싶다며 글로 써달라고 했다. 쓰는 걸 좋아하고, 할 수 있다면 쓰는 걸 업으로 삼고 싶은 나이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쓰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었다.  

집 짓기는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다, 어떨 결에 같이 짓는 신세일뿐이다. 그리고 집 짓는 과정이라도 즐겁기라도 하면 또 모를까 오히려 고통스러웠고, 그렇다고 중도에 포기하고 혼자 돌아갈 수도 없어서 고난의 행군에 가까웠다. 사람 때문에, 돈 때문에, 무엇보다 나의 욕망과 현실이 부딪히는 걸 보고 있자니 괴로웠다. 어쩌다 집짓기, 어쩌면 민낯을 드러내는 과정이 뭐 자랑이라고, 글로 남기겠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쓰고 싶어 졌다. 아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평생 언제 다시 이런 경험을 해보겠나.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 보면 사람들이 글을 쓰는 네 가지 동기가 나온다. 잘난 체하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시쳇말로 하면 관종), 멋진 문장을 쓰고 싶은 미학적 열정, 진실을 기록하여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역사적 충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다.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의 네 가지 동기가 조금씩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동안 적당히 착한 척하고 이기적인 자신을 다소 이타적인 사람으로 잘 포장하고 살아왔는데 이번 기회에 사실은 나 이런 사람이라고 민낯을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멋진 문장까지는 아니지만,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는 멋진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라도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미리 예방주사라도 놔주고 싶었고, 아파트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집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고통이 나를 쓰게 했다.

집 짓는 것이 즐거워서가 아니라 여전히 고통스러운 과정이어서,

집 짓는 이유가 선명해져서가 아니라 여전히 혼란스러워서,

집 짓는 것이 자랑스러워서가 아니라 나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과정이 부끄러워서, 쓰면서 정리하고 싶었다. 하루하루 일희일비하면서 집에 함몰되지 않고, 나 자신을 좀 객관화하여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수억 대의 큰돈을 버리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끝날 것 같아 두려웠다. 고통일지라도, 고통이라서 기록해야 했다. 집이란 그런 거니까.


다른 집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비교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살면서 가장 경계했던 것이 남과의 비교다. 비교하는 삶을 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왔다. 위만 보면 살 수 없다. 아래도 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은 수 없이 많고, 나보다 잘난 사람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비교하는 순간, 삶은 남보다 못한 것이 된다. 그런데 집을 지으면서 내 안에 잠복해있던 비교의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4차 평면도가 나오고, 설계 미팅은 세 가족 모두 개별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때 자꾸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당연히 궁금할 수 있다. 크지 않은 땅에 세 집을 앉히는 과정이어서 긴밀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집 모양이 땅 분할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끊어내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특히 2호 집 부부가 건축시공과 조경 관련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전문성을 가진 그들의 설계에는 특별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개별적으로 설계 미팅이 진행되다 보니 각 집의 설계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시차를 두고 다른 집 설계도를 볼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심란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남의 집은 넓어 보였고, 남의 집 설계는 좋아 보였다. 옆집이 면적을 넓히면 나도 더 넓혀야 할 것만 같았고, 옆집이 다락방을 만들면, 나도 다락방을 만들까, 하는 마음에 쉽게 휩쓸렸다. 이렇게 남의 집이나 흘깃거리고 있는 나 자신이 싫었다.


도대체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요?


옆집이 아닌 내 마음속 욕망과 욕심, 허영심도 문제였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나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내 생각, 내 안목과 취향, 내 수입과 재산까지 드러낸다. 거기에서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생겨난다. 집 잘 지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고, 집이 넓어 보였으면 좋겠고, 예쁘고 유니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러다가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보다 '어떻게 보일 것인가'가 압도하게 된다.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개방감이 있으면서 프라이버시도 중요해요. 실용적이면서 예쁘면 좋겠어요. 집은 넓고 집 간 간격은 좁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싸고 좋은 집 지어주세요.


집을 짓다 보면 모순의 끝판왕인 나 자신을 만난다. 수많은 인지부조화와 내면의 부조리를 경험하게 된다. 예산은 적게 들이면서 집은 튼튼하고 예쁘게 잘 짓고 싶다. 집은 넓게 개방적으로 지으면서 프라이버시도 지키고 싶다. 한치의 공간 낭비도 없이 효율적으로 짓고 싶고, 디자인적으로도 예뻤으면 좋겠다. 집을 넓게 하면서도 옆집과의 간격은 유지되고, 마당도 어느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씩 뜯어보면 모순되거나 양립 불가능하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개방감을 살리면 프라이버시의 일부는 포기해야 한다. 집의 바닥면적을 넓히면 옆집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마당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인지도 모른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공부도 해야 하고 다른 집도 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눈 높아지고 비교하게 되고, 잘 짓고 싶은 욕망은 날로 커지는 것이 평균 이상으로 엄청 이상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에 휩쓸려 마음이 휘청거리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쓰면서 마음도 가라앉히고, 나란 사람을 직시해보고 싶다. 그래 봤자, 끝 갈 데 모르는 나를 확인할 뿐이더라도, 그런 과정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을 지라 일단 쓰자. 그렇게 어렵게 마음을 먹었건만, 당장 써지지가 않았다. 쓰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마음은 어지러웠다. 마음을 가라앉힌 후 이제야 쓰기 시작했다.



집 지을 때는 좋은 땅과 좋은 설계, 충분한 예산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막상 해보니까 정신수양, 마인드 컨트롤이 필수 중 필수다.


1. 옆집은 우리 집이 아니다.

남의 집이 확실히 좋아 보인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것만도 같다. 하지만 옆집을 따라 하다 보면 내 집도 아니고 남의 집도 아니게 된다. 남의 집과 비교할 시간에, 우리 가족끼리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우리 집을 짓는 일이다. 우리 집에 집중해야 한다.



2. 잡지에 나오는 집도 우리 집이 아니다.

나는 연예인도 아니고, 갑부도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잡지에 나오는 집은 보여주기 위한 집이다. 늘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없다. 보여주기 위한 집이 아니라 생활하는 집을 짓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의 생활에 맞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싸고 좋은 집은 없다.

나도 여러 번 이렇게 주문을 하고, 실제로 지인이 짓기에 싸고 좋은 집을 기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땅이 무한하고, 예산이 무한정하면 하고 싶은 디자인, 좋은 재료 때려 넣어 지으면 된다. 하지만 나는 매우 유한한 땅에, 뻔히 보이는 예산으로 집을 짓는 사실이다. 눈에 예산을 맞출 게 아니라, 내 예산에 내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내 예산에 맞는 집이 좋은 집이다(라고 생각하고 살면 된다).


4. 우리 집이 가장 좋은 집이다.

집 짓는 과정은 좌절하고 포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실은 나를 번번이 좌절시킨다. 이럴 거면 돈 많이 모아놓을 걸, 로또라도 살까 하는 마음이 수백 번 든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돈을 때려 넣는다고 좋은 집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정 붙이기 나름이고 살기 나름이다. 우리 형편에 맞는 우리 집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이다, 우리 집이 제일 좋다(라고 스스로 세뇌하고 자뻑에 빠지는 과정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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