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17. 2020

그림 같은 집 지을 수 있을까

인허가도면을 확정하다

각 집의 설계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9월 1일 세 집이 한 자리에 모여 최종 미팅을 했고, 이때 나온 의견을 설계에 반영하여 인허가를 위한 설계도면을 확정했다. 이제 인허가 접수만 남았다.


못 본 사이 완전히 달라진 우리 집 설계를 두고 다들 걱정했다. 나도 건축디자인 잡지를 많이 보았지만 이런 집은 못 보았다. 우선 현관 밖에 위치한 화장실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다. 왜 문 밖에 그리고 동남향 좋은 위치에 화장실을 두냐는 것이다. 계단이 110도 이상 각도로 꺾임으로써 계단실 위쪽이 보이드(void)가 되는 것도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비어있는 보이드 공간이 아깝다고 했다. 거실과 주방이 분리되어 꺾인 것도 어색한 모양이었다.


나 역시 처음엔 거실과 주방이 하나로 통합된 방식을 원했지만, 고민할수록 분리된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아무리 잘 해도 주방이 늘 깨끗할 수가 없고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처음 설계가 더 좋았다는 말도 나왔다. 공간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효율성보다 우리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디자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모험하지 말고 안전하게 평범한 디자인을 원했지만, 하다 보니 특색 있는 집이 되어 있었다.


인허가도면(좌측이 1층, 우측이 2층)


여름을 지나고 나니 풀이 무섭게 자랐다. 추석에 부모님이 오셔서 처음으로 땅을 보러 갔다. 아무 말 없이 보기만 하셨다. 뒷집 빨간지붕집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가 왜 빨리 안 짓냐고 하셨다. 설계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혼자 사셔서 그런지 빨리 집 지어서 서로 왕래도 하고 지내면 좋겠다고 하셨다. 할머니 집에는 하얀 백구가 있었다. 처음엔 갈 때마다 짖었던 백구가 이제 익숙해졌는지, 더 이상 짖지 않았다. 우리를 이웃으로 받아들인 듯 했다. 할머니 집 백구와 우리 집 백구 여름이가 처음 만나면 어떨지 궁금하다. 앞으로 우리뿐만 아니라 동물들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제초기를 빌려 풀을 베고 있는 남편


일주일 뒤 시공 소장인 2호집 아빠가 땅에 집을 그려보자고 했다. 풀을 베기는 했지만 풀과 돌이 가득한 고르지 않은 땅에 어떻게 그림을 그리자는 건지 의아했지만, 밤도 주울 겸 서로 얼굴도 볼겸 땅에 모였다. 수령이 오래된 밤나무는 꽤 토실토실한 밤송이들을 우리 땅에 떨어뜨려놓았다. 장갑을 끼고 집개를 들고 아이들이 밤송이를 주우러 다녔다.


노끈과 돌, 막대기를 활용해 원시적으로 집터를 그려보고 있다.


측량 말뚝을 기준으로 노끈과 파란 라커로 건축선을 표시해보았다. 주차장 위치, 마당, 집 위치, 각 집간의 거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릴 때 땅에 막대기로, 곱돌로 집 그리며 소꿉놀이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종이에 있는 그림만 보다가 진짜 땅 위에 내 손으로 그림을 그려보니 이제서야 집 짓는 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과연 그림 같은 집 지을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