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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17. 2020

벽이 하나 사라진 이유

건축인허가와 현황측량


한 번에 인허가가 떨어질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급할 것이 없었지만, 시공소장 입장에서는 초조한 일이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겨울이 오기 전에 기초공사를 해놓고 봄이 오면 공사를 재개할 계획이었는데, 이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있었다.

 

우리가 집짓는 과정을 토목개발행위 발생이라고 해석하고 이를 보완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원래 그렸던 계획대로 갈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했고, 추가 토목설계로 인한 토목비용의 증가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것을 피하려고 시공소장이 매일같이 구청에 드나들며 공무원을 설득하려고 고생하고 있었지만 잘 안되는 모양이었다. 도농복합지역에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곳이라 더 까다로운 것 같다고 했다. 결국 토목설계사무소에 토목설계를 의뢰했다.


정면에 보이는 것이 우리집, 옆으로 2,3호집이 서 있다.


그 사이 모델이 도착했다. 모델은 건축을 배우는 학생에게 하청(?)을 주어 만든다고 했다. 평면으로만 보던 집을 입체로 보는 순간이었다.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해보고, 레고로도 만들어보던 그림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복잡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일감은 세 집 중에 우리집이 제일 작아보인다, 였다. 우리집 연면적이 가장 작긴 하지만, 나란히 비교해서 보니 마음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면적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썼건만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오른쪽 땅의 모양 때문에 사선처리된 옆면도 칼로 뚝 잘린 듯한 모습이었고, 내 마음도 그랬다.


현황측량하는 모습


또 한 번의 현황측량도 이루어졌다. 토목개발행위 진행 시 추가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측량이라고 했다. 이 역시 또 한 번의 비용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측량할 때 가구당 한 명씩 참관해야했는데 우리 집에서는 내가 참석했다. 역시 인접 부지 토지주(그의 자녀분들)도 모두 참석했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이웃 분들을 한자리에 만날 수 있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던 서로 간의 틀어진 사정을 처음부터 다시 듣게 되었다. 한쪽의 말만 들어서는 알 수 없는 일이어서 나는 최대한 예의를 차려 '속상하셨겠네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현황측량이 끝나고, 우리집 토목공사를 맡게 된 토목 사장님도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도 설비 일을 하시기 때문에 나는 소위 노가다 일을 하시는 분들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과 존경심이 있다. 먼저 달려가 인사를 드렸다. 잠깐이지만 이야기 물꼬가 터지니 우리집 설계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았다. 현장에서 일하는 분의 의견은 어떨지 궁금했다. 2층 거실을 하나의 공간으로 틀 것인지, 가벽으로 막아서 쓸 것인지 고민이라고 했다.


공간을 작게 쪼개기 보다는 가능하면 넓게 사는 게 좋아요. 필요하면 가벽은 나중에라도 세울 수 있지만, 있는 벽을 없애기는 어렵거든요.


토목사장님의 이 한 마디에 벽이 하나 시원하게 날아갔다. 남들은 걱정했지만 우리는 통쾌했다. 토목사장님의 말이 무조건 맞을 것 같았다. (아니면 말고!ㅎㅎ)


토목사장님(모자 쓰신 분)과 회의 중인 시공소장(201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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