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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19. 2020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토목공사가 시작되다

땅에 기계가 들어가고 일하는 분들이 분주히 오가자 하루가 다르게 땅의 풍경이 달라졌다. 현장소장이 작업이 끝날 때마다 사진을 보내주었다. 사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공사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무슨 마술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보였고, 마치 며칠 안에 집이 지어질 것만 같은 속도감이 느껴졌다.


옹벽 기초 콘크리트 타설하는 모습


먼저 옹벽이 세워졌다. 옹벽은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벽처럼 보이지만, 사실 경사지의 흙이 무너져 아래쪽으로 흘러 내려오는 것을 방지하려고 세우는 구조물이다. 애초 건축설계에서는 우리 땅의 경사가 급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없었는데, 인허가 과정에서 토목 보완명령이 떨어지면서 옹벽이 추가된 것이다.


옆집에서 본 옹벽 모양, 원래 이웃집에서는 낮은 담장이 생겼다.


이삼일 사이 집터 경계를 빙 둘러 옹벽이 세워졌다. 옹벽 때문에 이웃들과의 토지 경계가 분명해졌다. 우리가 원한 옹벽도 아니었고, 옹벽이 있음으로 인해 혹시 모를 분쟁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조심스러웠다. 마치 초등학생 짝꿍이 책상에 금을 긋고 못 넘어오게 한 것처럼 금을 그어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땅의 경계를 따라 옹벽으로 둘러싸여졌다


옹벽 안쪽으로 잡석과 흙이 채워지면서 집 지을 땅이 높아졌다. 높아져서 좋다기보다 위압감이 느껴졌다. 이웃 분들도 이렇게 높아지는 거였냐고 현장소장에게 볼멘소리를 했다고 한다. 공사 시작하기 전에 설계도를 보여드리며 설명을 해드렸지만 말로 듣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천지차이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집을 짓는 게 이웃들 입장에서는 안 좋을 수 있다. 사방이 탁 트인 곳을 막게 되면서 서로 간섭이 생긴다. 집 지을 땅이 이웃집들보다 높아지면 우리 입장에서는 채광과 조망 측면에서는 유리해지지만, 이웃 입장에서는 일조량과 조망이 나빠질 수 있다. 현재 공터인 집 뒤쪽에 건물이 올라가면 우리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공사 시작하기 전에 걱정이 많았다. 콘크리트 건축물에는 겨울 공사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하던 공사도 그만두는 판에 겨울에 공사를 시작한다고 아버지도 한 걱정을 하셨다. 나도 봄부터 공사를 시작했으면 했다. 하지만 이미 작업팀이 스탠바이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현장소장을 믿고 가는 수밖에 없었지만, 걱정이 되었다. 그때 엄마가 올 겨울은 따뜻할 거라고 안심하라고 했다. 가을에 김장 무를 뽑았을 때 뿌리가 길면 그해 겨울은 춥고, 뿌리가 짧으면 그해 겨울은 따뜻한데, 올 가을 무에는 뿌리가 아예 없었다고 했다. 미신인 것도 같고, 나름 과학적인 것도 같은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콘크리트 양생 중인 실내 온도


엄마 말이 맞았다. 올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다. 아직까진 한파도 없고, 영하로 떨어지는 날도 거의 없었다. 겨울 중 가장 춥다는 소한에도 봄비 같은 겨울비가 내렸다. 사실 겨울에 따뜻한 것이 이상기온 현상이고, 지구 생태계를 봤을 때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우리 공사에는 더없이 좋았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이상 기온이 걱정되면서도 우리 공사하는 데는 좋으니 따뜻한 겨울이 너무나 고마웠다. 큰 추위 없이 영상의 기온이 지속되면서 공사는 착착 진행되었다.


현장소장이 덕을 많이 쌓았나 봐요. 겨울 날씨가 이렇게 좋은 거 보면.


공치사인 줄 알면서도 현장소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공사 중에 업 앤 다운하고 있는 내 마음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게 믿는다. 나중에 집 다 짓고 나면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었다고.


높아진 집터에 올라가 하울링하고 있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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