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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19. 2020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추가 공사와 추가 비용

공사 시작하고 한 달도 안된 시점에 추가 공사비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당황스러웠다. 그토록 눈물 콧물 흘려가면서 힘들게 공사계약서에 도장 찍고, 땅파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추가 공사비용 얘기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말을 꺼내는 사람도 어려웠을 것이다. 집터의 옹벽공사가 마무리된 시점이었는데, 토목팀에서 앞마당 쪽도 옹벽공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는 것이다.


왜 지금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건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건축설계와 별개로 토목 설계도 끝내고, 인허가도 나고, 감리도 현장에서 보고 간 후였다. 시공 소장님은 책상에서 그림으로 일하는 것과 실제 현장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공사가 시작되고부터는 현장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했다. 암요. 그렇겠죠. 특히 안전문제를 들어 이야기하면 누군들 쉽게 반대할 수 있을까. 남편과 나는 다시 한번 매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옹벽 거푸집 떼어내고 있다


세 집이 함께 집을 샀기 때문에 토목공사비용은 세 집이 1/n을 하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이번 옹벽공사는 오롯이 우리 집 피해 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 집에 관한 것이지만 비용은 세 집이 같이 분담해야 하니 우리 입장에서는 흔쾌하게 하자고 하기도 어려웠고, 안전문제가 걸려 있으니 그냥 넘어가기도 어려웠다. 우리 땅 전체 설계의 책임자인 정 소장님께 sos를 쳤다. 정 소장님이 와서 보시기로 했다. 현장 소장이 논의한 결과를 알려주러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무슨 시험 성적이라도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때 2호 집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우리는 1/n 비용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부담 없이 결정했으면 좋겠어요.


눈물이 핑... 까지는 아니지만 너무 고맙고 든든했다. 나 같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일이십만 원도 아니고, 여차하면 몇백만 원 늘어날 수도 있는 마당에...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자문해보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옹벽공사를 하는 대신에 경사지에 계단을 설치하고, 조경으로 문제를 예방하고 보완할 수 있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 소식을 전한 현장 소장님에게도 잔뜩 따가운 시선을 보내다가 갑자기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정 소장님 블로그에서 알게 된 책 '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에 나오는 대목을 읽었다. 사람이 집을 짓다 보면 참 간사해진다. 어떨 땐 미워하고, 어떨 땐 좋아하고, 어떨 땐 의심의 눈초리를, 어떨 땐 신뢰의 눈빛을 보낸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집을 짓다 보면 다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돈 때문에 힘들었다가, 이웃의 말 한마디 때문에 마음이 확 풀렸다.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이웃은 감히 돈 따위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지지고 볶으면서 살지 몰라도 오늘만큼은 집 짓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마워요! 그 마음, 기억할게요.


일이 잘 풀릴 때면 아내와 나는 찰리(시공 소장)에게 연신 감사를 표하고 심지어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다 쓰러져 가던 작은 오두막이 번듯한 집으로 탈바꿈했고, 크기며 구조도 딱 우리가 원하던 대로였다. 하지만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나는 혹시 이놈이 마냥 자기만의 이상에 빠져서 다른 사람들은 죄다 파멸로 몰아넣는 ‘건축가의 탈을 쓴 아합(Ahab. 성경에 등장하는 부패한 폭군 왕)’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주말 집짓기(마이클 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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