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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Jan 19. 2020

쩐의 전쟁

기성금 납입 대작전

기초가 서고 그 위에 기둥이 섰다. 평면이 입체로 진화하는 순간이다. 진도가 팍팍 나갔다. 무엇보다 날씨가 도와주고 있었고, 현장도 순조로웠다. 진도가 잘 빠지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에 따라 공사대금을 빨리, 빨리 조달해야 했다. 단계별 공정이 완료되면, 공사가 이루어진만큼 지불해야 했다. 이를 기성금이라고 한다. 공사가 빨리 진행됨에 따라 기성금을 지불하는 시간도 앞당겨지고 있었다. 우리 예산에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금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어서 다른 데서 융통해와야 했다. 그야말로 총동원령이었다.


그때 돈에 대한 서로의 입장 차이가 발생했다. 돈을 줄 사람은 하루라도 늦게 주기를 바라고, 돈을 받을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받기를 바란다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조달해야 하는 건축주 입장에서는 하루 이틀이라도 말미가 있기를 바랄 것이고, 현장소장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입금돼야 공사를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이틀은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의 입장에 따라 매우 긴 시간이기도 했다.

  

비계가 설치되어 있고 거푸집을 설치하고 있다
창틀을 만들어 거푸집에 고정하고 있다.


돈에 대한 시차 때문에 남편과 나 사이에도 묘한 긴장이 흘렀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각자 벌어 각자 쓰자'는 식으로 살았다. 돈 때문에 신경 쓰면서 살고 싶지 않아서 남편의 벌이에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살아왔다. 괜히 신경 쓰면 머리만 아프고 차라리 모르는 게 속 편하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한 번 경제공동체로 묶이면 이혼할 때도 힘들어진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경제적으로 독립적으로 살다가 혹시 헤어지게 되면 위자료, 재산분할로 다투지말고 쿨하게 헤어지고 싶었다.


그런데 집을 짓게 되면서 이런 쿨한 생활은 끝났다. 서로의 수입과 지출에 대해서 알지 않으면 안 되는 몹쓸 상황이 된 것이다. 제길! 쿨하고 멋지게 사는 일은 이제 끝났다. 나는 남편의 수입에 대해서 알아야 했고, 씀씀이에 대해서도 따져야 했다. 정말 하고싶지 않은 일이었다. 일단 남편의 수입에서 본인이 쓸 돈을 빼고 나머지를 나에게 입금하기로 했다. 그래야 내가 나머지를 융통할 수 있었다. 돈 나갈 일은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 오는데, 남편에게 들어올 돈이 하루라도 늦게 들어오면 마음이 초조했다.


돈 언제 보내줄거야?


이게 뭐라고, 이 말을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돈 얘기를 꺼내는 일은 나에게 너무 큰 부담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막 같이 살기 시작한 사람들 같았다. 남들은 이미 한참 전에 했어야 하는 재정통합을 뒤늦게 하려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어쨌거나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거대한 숙제를 함께 풀어가는 듯한 기분도 살짝 든다.(물론 그건 아주 잠깐이고, 대체로 쪼그라든다ㅎ) 딸아이가 우리 가족을 설명하면서 모두 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다고 했었는데, 딸내미 보고 있나? 우리 지금 한 곳을 보고 있드아!!! 그놈의 집 때문에! 그놈의 돈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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