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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Feb 10. 2020

우리 집에 몰래 다녀간 손님

골조공사 끝난 날

'짓다'라는 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

내가 아는 한 가장 생산적이고 창조적이면서, 가슴 설레게 하는 말이다.  


밥을 짓다

옷을 짓다

집을 짓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욕망은 모두 짓다,라는 동사를 쓴다. 먹을거리 농사를 짓고, 아프면 약을 짓고, 짝을 지어 자식농사도 짓고, 아이 낳으면 이름을 짓고, 글을 짓고, 눈물을 짓고, 크고 작은 죄도 지으면서 살아간다. 짓다, 는 '뭔가 만든다'라는 뜻이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짓다, 라는 말에는 쌀 한 톨, 바느질 한 땀 한 땀, 벽돌 한 장 한 장을 귀하게 다루는 듯한 정성이 .


늘상 밥을 짓고, 옷도 지어봤고, 소소하게 농사도 짓고 글을 짓지만, 집을 지을 줄은 몰랐다. 설마 설마 하며 짓기 시작한 집이 이제 제법 집의 모양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짓는 과정의 고단함은 크지만, 결과가 눈 앞에 보이니 고단함은 잠시 잊게 된다.


벽체 타설까지 마무리한 세 집,  베라산 아래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다.


지난 토요일에 세 집 골조공사가 모두 끝났다. 지붕을 제외한 바닥과 벽체가 모두 마무리되면서 집의 뼈대가 얼추 드러났다. 하던 공사도 중단한다는 한 겨울에 공사를 시작했으니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그래도 큰 추위 없이 타설을 끝냈으니 얼마나 뿌듯할까. 현장 소장의 얼굴에 안도감과 흐뭇함이 묻어났다. 기분 좋게 술잔을 부딪히며, 올 겨울 따뜻한 날씨는 과연 누구의 덕이 쌓인 결과일까 티격태격했다. 물론 이럴 땐 무조건 현장 소장의 덕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고양이는 발자국을 남기는 건가ㅎ


골조공사 마무리한 것도 볼 겸, 정월대보름을 맞아 지신도 좀 밟아줄 겸 현장으로 갔다. 서둘러 갔는데도 우리보다 먼저 현장에 다녀간 손님이 있었다. 발로 꾹꾹 보란듯이 발도장을 찍어놓아 완전범죄는 글렀다. 우이씨, 탄식하는 현장 소장의 경쾌한 톤을 보니 고양이 손님 정도는 봐줄 수 있는 모양이다.



현장에 가면 일하시는 분들의 연장과 일한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거푸집을 잡고 있던 폼타이가 사방에 나와 있어서 각종 장비들을 걸어놓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혹시 방해가 될까 봐 공사 중에는 현장에 가지 않고, 공사를 하지 않는 일요일에 가다 보니 일하는 분들을 직접 대면할 기회는 많지 않다. 하지만 현장에 가면 손때 묻은 연장과 흔적들이 우리를 반기며 말을 거는 것만 같다.


이렇게 보니 이제 집 짓는 게 실감 나지요?

일부 콘크리트 곰보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잘 보수할 겁니다.

벽체가 높아서 타설 하는데 아주 애를 먹었어요.

계단이 아주 예쁘게 잘 나왔어요.

볕도 잘 들어요.


이번에 가장 많이 말을 거는 곳은 바로 계단이었다. 우리 집 설계도에서 가장 걱정하기도 하고,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반 가정집에서 이렇게 생긴 계단을 거의 보질 못했다. 뚫어져라 설계도를 봐도, 모형을 요리조리 뜯어봐도, 레고로 만들어봐도 모양이 잘 그려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막상 골조를 끝내고 나니 제일 마음에 든 부분이 계단이었다. 자꾸 그쪽으로 눈길이 갔다. 벽체의 입면도 깔끔하고 반짝거렸다. 벽지나 페인트로 덮지 않고 그냥 노출 콘크리트로 두어도 좋을 것 같았다. 욕심 같아서는 지붕에 천창을 뚫어서 빛이 계단실 아래로 쏟아지면 좋겠다, 는 생각도 있었지만, 결로 때문에 천창을 말리는 사람도 많고, 비용 측면도 부담되어 일단 마음을 접었다. 나의 설레는 마음, 아쉬워하는 마음이 현장 소장에게 전해졌는지, 잘 연구해서 예쁘게 만들어보겠다고 한다. 과연 어떻게 만들어질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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