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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Feb 12. 2020

빛과 바람이 머무는 집

동남향과 남동풍

어떻게 하면 빛과 바람을 최대한 들일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집 짓는 사람 누구든 마찬가지겠지만 나에게는 조금 특별한 이유가 있다.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20년 전 시력을 상실했다. 어떤 의학적 병명과 상관없이 자식을 앞세운 충격과 좌절감으로 더 이상 세상을 보고 싶지 않아 했던 엄마의 지옥같은 마음 상태가 신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 이후 엄마는 항상 아빠 손을 잡고 다닌다. 원래도 늘 붙어 다니는 사이였는데, 이제는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1급 시각장애인이지만 생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집과 같은 익숙한 장소에서는 혼자서도 웬만한 생활은 다 한다.


엄마가 의지하는 것은 '빛'이라고 한다. 형체를 볼 수는 없어도 빛을 감지하고, 빛의 정도를 느끼고, 빛의 색도 본다고 한다. 빛과 다른 감각을 활용하여 모양도 파악하고, 날씨도 느끼고, 세상을 본다. 엄마와 함께 사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엄마를 위해서 가능한 많은 빛과 바람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동남향집의 아침


채광과 통풍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집의 향이다. 남향집이 좋다는 건 익히 들어서도 알고, 우리가 정남향 집에 살아봐서도 안다. 여름엔 빛이 거실 창문을 감히 넘지 않고, 겨울엔 거실 깊숙이 빛이 들어온다. 여름엔 에어컨이 필요 없고, 겨울 난방비도 조금 나온다. 남향집에 살아본 이후 남향집 예찬론자가 됐다.


거실 가로로 긴 고정창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집은 동남향 집이 되었다. 땅의 생긴 모양이 그렇고, 세 집을 앉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토록 애정하고 고대하던 남향집이 아니어서 속이 좀 상했다. 나보다 더 향을 따지던 남편은 오히려 요즘엔 동남향도 좋다고 했다. 빠른 자기 합리화도 전염되는가. 나도 동남향 집의 장점을 확증 편향하기 시작했다.


11시쯤 거실로 들어오는 빛(겨울 기준)


그 다음 중요한 것은 창이다. 창은 빛과 바람이 드나드는 통로 역할을 한다.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한 구조가 한옥의 맞바람 구조다. 엄마는 동남향으로 앉은 집에 맞바람만 치면 최고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여름에 남동풍이 불기 때문에 바람길만 잘 터 놓으면 여름에 에어컨 없이도 시원할 거라고 했다. 엄마는 지금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맞바람만 의지해서 한여름을 난다. 우리도 맞바람을 강조했다. 그 결과 1층 방과 거실의 창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었다. 막판에 1층 슬라이딩 도어까지 없애면서 바람이 돌아가거나 휘어가지 않고 쭉쭉 뻗어나갈 수 있는 고속도로가 마련된 셈이다.


노란 형광색이 바람길이다


창이 채광과 통풍에 좋지만, 창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건축비가 높아짐을 의미한다. 건축비 총액을 조정하면서 주요 창을 제외한 창은 없애고, 몇개는 고정창을 선택했다. 옆집의 벽과 마주하여 전면에 책장을 짜 넣기로 거실 벽 천장 쪽으로 긴 고정창을 내서 해가 동쪽에서 남쪽으로 넘어갈 때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다이닝 앞 고정창으로 들어오는 풍경


다이닝룸의 북서쪽에도 큰 고정창을 냈다. 옛날 한옥집이 하던 차경을 흉내 낸 것인데, 집 뒤쪽 산과 큰 나무를 집안으로 끌어들일 작정이었다.


딸아이와 내가 좋아하는 노래 포카혼타스 주제가 'colors of wind'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Can you sing with all the voices of mountain?

Can you paint with all the colors of the wind?

How high does the sycamore grow?

If you cut it down then you'll never know.

And you'll never hear the wolf cry to the blue corn moon.


우리도 엄마가 느끼는 빛과 바람의 색깔로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창틀 작업을 마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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