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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Feb 16. 2020

남편의 세컨드 하우스

네버엔딩스토리

다 지난 일이긴 한데, 이렇게 하면 어땠을까?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끝난 일은 얘기하지말라며 남편을 타박했다. 골조가 끝난 마당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고 하다니! 다 부질없는 짓 아닌가. 나의 갖은 구박에도 남편은 굴하지 않고, 더욱 신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1층이랑 2층의 향을 다르게 하는 거야. 이렇게. 어때?


뭔가 흥미로워보이는데,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공간지각능력이 부족한 내가 헤매고 있으니, 큐브까지 들고 와서 보여준다. 이렇게 말이야, 하며 큐브를 비트는데 '오! 천잰데...' 속으로 생각했다. 말로는 '이상하다, 별로다, 말도 안 된다, 돈 많이 들어가는 디자인이다' 투덜거리면서도 솔깃했다. 역시 간헐적 천재!....3초 후 현타!ㅎㅎ



자꾸 보면 정이 붙어서 그런가, 나와 남편의 합리화 덕분인가. 우리집이라서 그런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가는 시점에 펼쳐지는 남편의 상상이 못마땅했었다. 아쉬운 마음을 들춰내고, 후회를 조장하고, 실패한 것처럼 느껴져서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일에 대한 아쉬운 마음, 후회하는 마음이 꼭 나쁜가? 아니 그런 것이 없을 수가 있긴 한가? 그런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내가 무슨 권한으로 남의 생각까지 지배하려는 건가? 상상은 자유고, 상상력은 특권 아닌가? 상상하는데는 돈이 안 든다. 게다가 재미있다. 대지조건 때문에, 돈 때문에 못했던 것도 상상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못 하게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장려할 일이지. 남편의 상상력에 권력을 주고, 나는 남편의 데려가는 세계를 향유하면 된다. 


설계가 한창이던 때는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 남편의 근거없는 낙관과 나의 끝모르는 두려움이 싸우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미래가 무질서하게 충돌하는 시간이었다. 집짓기에 확고한 선호가 있었던 남편과 달리 나는 좀처럼 애착이 생기지 않아 애를 먹었다. 정작 설계에 애정과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 설계하면서 알콩달콩 재미에 빠져야 할 때, 나는 시큰둥했고, 시니컬했다. 그때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더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으면 좋았을텐데, 우리는 많이 싸웠다.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분명히 있지만, 그 시간들이 과연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는 거겠지.


사람이 하는 일이 완벽할 수 없다. 집을 많이 지어본 건축가가 자기 집을 지어도 늘 아쉬운 부분이 생긴다고 한다. 하물며 우리 같은 초짜가 어찌 감히 아쉬움 없는 완벽한 집을 꿈꿀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집이 있기는 한가? 후회하는 마음, 아쉬운 마음, 부족한 부분도 우리 집에 남겨진 나무 옹이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몸에 난 상처를 보며 넘어지고 부딪히고 찢어졌던 시간을 떠올리듯, 집 구석구석에서 우리가 싸우고 충돌했던 많은 시간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내가 내 몸에 난 상처를 지워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듯, 집에 생긴 옹이도 우리의 삶, 우리 집의 엄연한 부분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 땅에 마음껏 상상해보는 것은 설계할 때만 허락된 것이 아니다. 집을 짓고 있는 지금, 집을 다 짓고 나서도 얼마든지 우리에게 허락된 즐거움이자 재미다. 우리의 상상이 물리적인 땅과 예산이라는 제약조건에만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  


이제부터 다 지난 일에 대한 남편의 못 말리는 상상은 그냥 두려고 한다. 나는 옆에서 얘기나 듣고, 커피나 마셔야겠다. 어디 이제 마음껏 해보시지!  



다 지난 일들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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