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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Feb 23. 2020

집이라는 풍경

빨간 지붕 집

우리 땅에 있던 구옥을 철거했을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것은 장차 우리 뒷집이 될 빨간 지붕집이었다. 빨간 지붕이라 사방이 초록인 가운데 더 튀었다. 얼마 후 빨간 지붕 집 할머니를 만났다. 허리가 구부정한 여든이 넘은 할머니인데 혼자 사신다고 했다. 우리가 할머니 앞집이 될 거라고 했더니 서로 경계없이 왔다 갔다 왕래하며 잘 지내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면 좋지요, 뭣 모르고 대답했었다.    


집 골조공사가 끝난 지금, 빨간 지붕 집 할머니 볼 면목이 없어졌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경계없이 왕래하기가 힘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허가를 위해서 토목을 보강하면서 우리 땅과 할머니 땅 사이에 옹벽으로 경계가 세워졌고 부지가 높아지면서 우리 땅과 할머니 땅 사이에 레벨 차가 생겼다. 바닥 레벨이 올라가니 집도 올라가면서 할머니 입장에서는 앞이 가로막히게 된 것이다. 밭에 그늘이 져서 이제 농사는 다 지었다고 할머니가 현장소장에게 하소연을 하셨다고 했다.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할머니 농사를 망쳤다고 생각하니 괜히 민망하고 죄송스러웠다.



다른 사람의 풍경이 된다는 마음으로 집을 짓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웃이 되면 서로에게 어쩔 수 없는 풍경이 되고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최대한 동네에 스며들면서 조화롭게, 할 수 있는 한 서로에게 간섭과 피해를 줄이면서 집을 지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좁은 땅에 집을 앉히다 보면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고백건대 우리 집 설계에만 함몰되어 이웃에 대한 생각은 많이 못하기도 했다.



문득 내가 빨간 지붕 집을 애정 하는 마음이 과연 어떤 것일까도 궁금해졌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우리 집 1층 방과 식탁 앞 고정창 안으로 빨간 지붕 집이 들어온다. 나는 속으로 음, 나쁘지 않은 풍경이야, 생각했었다. 도시에서 잘 볼 수 없는 원색의 빨간 지붕, 작지만 볕 잘 드는 잔디마당, 낡은 담벼락에 걸린 무청 시래기,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는 백구, 그 앞에 아담한 앵두나무, 그리고 뜯겨진 비닐하우스까지 할머니의 일상은 우리 집 창으로 들어와 풍경이 된다. 그런 할머니의 일상에 내가 느끼는 호감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웃에 대한 관심, 향후 우리가 맺어갈 관계의 단서인가? 혹시라도 내 마음에 낡고 예스러운 풍경을 소비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할머니는 나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는데, 나는 차가운 손을 내밀게 된 것은 아니었는지 걱정된다.


그나저나 코로나 시국에 할머니는 어찌 지내시나? 오늘 창으로 들어온 빨간 지붕을 보면서 할머니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요즘 주말마다 그 동네에 가는데 할머니를 뵙지 못했다. 추워서 안 나오시나? 경로당에 가셨나? 농한기라 아들네 딸네 길게 다니러 가셨나? 면목은 없지만, 곧 할머니를 뵙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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