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엇이든 씁니다 Mar 02. 2020

집이라는 현실

현실과 로망 사이를 서성이다

엄마, 왜 우리 집에는 아무것도 없어?


(흐억, 아무것도 없다니! 피땀 눈물 흘려가며 짓고 있는 집인데!!!)


현장을 방문하신 따님은 2호 집엔 다락방이 있고, 3호 집엔 지하공간이 있는데 우리 집엔 왜 그런 '스페셜한' 공간이 없냐며 따졌다.


난 처음부터 다락이나 지하는 생각도 안 했다. 어릴 때 아빠가 지어 올린 다락방에 살아도 봤고, 미국에서 홈스테이 할 때 럭셔리하게 꾸며진 지하 패밀리룸에서 몇 달간 살아봐서 그런가, 다락이나 지하에 대한 로망이 1도 없었다. 아파트도, 엘리베이터도 싫어하고, TV에 나오는 전망 좋은 펜트하우스에도 큰 매력을 못 느끼는 걸 보면 난 아무래도 수평 지향적 인간인 건가?


8년간 2층 집에 살아본 결과 집을 짓는다면 30평 남짓한 단층집을 짓고 싶었다. 집을 짓게 된 것도 집이라는 닫힌 공간에 짱 박히고 싶어서가 아니라 문만 열고 나가면 땅 밟을 수 있는 열린 곳에 살고 싶어서였다. 딸도 어린이에서 청소년에 가까워져 가고, 우리 부부도 중년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오르락내리락하는 삶보다는 들락날락하기 쉬운 수평적인 삶에 가까워진 것도 있었고. 그래서 애초 설계할 때 다락방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박공지붕 아래 다락방?


그런데 골조공사를 끝낸 현장소장님이 다락 얘기를 꺼냈다. 거푸집을 다 뜯어내고 나니 박공지붕 아래 공간이 너무 아깝다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다락방에 단호박이었던 난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솔깃한 듯 보였다. 다만 예산 탓인지, 나의 단호함 때문인지 강렬하게 갈구하지는 않았다. 딸아이는 물어보나 마나 좋다고 할 것이어서 아예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게 꺼지는 듯 보였던 불씨가 현장을 방문하신 따님 한 마디에 되살아났다. 옆집과 비교하며 다락방을 운운하니 나도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저렇게 원하는데 빚을 내서라도 해줄 걸 그랬나? 얼마가 더 드는지 물어라도 볼까? 이런 마음이 잠시 스쳐갔지만, 금세 정신을 차렸다. 딸은 방년 12세, 이제 곧 모든 게 귀찮을 사춘기에 접어들면 다락방에 기어올라갈 일 없다고 나는 확신했다. 금방 지나갈 바람이지만 그래도 현재 딸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제스처라도 취해야 할 것 같아서 물어보았다.




나 : 다락방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해?

딸 : 뭔가 나만의 비밀공간이 있었으면 해서...

나 : 네 방이 있는데, 다락이랑 방은 어떻게 다른 거야?

딸 : 방은 어느 집이나 있잖아. 그렇게 누구나 아는 공간 말고 숨겨진 공간이 있었으면 해서.

나 : 그런 공간이 꼭 다락방이어야 하는 거야?

딸 : 아니, 그건 아니지. 어디에 있던지 상관없지.

나 : 그럼 뒷마당에 직접 만들어보는 건 어때?

딸 : 그럼 더 좋지! 그런데 우리가 만들 수 있어?

나 : 그럼, 우리는 뭐든지 만들 수 있어. 아빠랑 할아버지랑 같이 만들자! 옛날 엄마가 살았던 집도 할아버지가 직접 지으셨어. 할아버지는 못하는 게 없어.

딸 : 정말? 응, 그러면 좋아!




내 말이 먹힌 건지, 딸이 그런 척해주는 건지 모르지만 일단 말발로 딸을 진정시켜놓고, 남편에게 딸아이가 짱 박힐 오두막을 만들라, 고 주문했다. 이렇게 우리 집 다락방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바람의 벽, 다락방으로 올라갈 계단 자리로 지목되면서 잔잔하던 내 미음을 요동치게 한 문제적 벽면



이 벽에 계단을 설치하고, 들마루를 짜서 천장에 올리면...



현장에 갔더니 현장소장님이 현장을 보여주며 다락방 얘길 다시 꺼냈다.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이번엔 남편도, 딸도 아닌 내가 문제였다. 처음부터 철통방어에, 남편과 딸아이 로망까지 주저앉히며 다잡았던 내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넓고 쾌적한, 이름만 다락방인 다락방을 얘기했다면 아예 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구석진 콘크리트 벽에 부착된 녹슨 사다리를 기어올라가 만나는 비좁은 다락은 내 마음을 강타했다. 공간적 상상력은 어느덧 이야기의 상상력으로 옮겨갔고, 상상의 나래와 함께 마음이 붕붕 뜨기 시작했다. 철저히 정해진 예산과 실용성이라는 현실에 입각하여 이성적인 (듯한) 논리로 가족들을 설득하더니, 결국 나 자신은 한낱 동화적 상상력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사람이라는 게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가.


그렇게 한차례 바람이 불었고, 우리 세 식구는 각자의 방식대로 흔들리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로망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나에게 새로운 로망을 남겼다. 우리의 아지트를 우리가 직접 그리고 만드는 것. 새들이 그러듯, 뒷산에 산책 다니면서 나뭇가지, 나무토막들 모아다가 얼기설기 지어 올리면 어떨까.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그 벽 앞에 선다. 나는 앞으로 그 벽을 '바람의 벽'이라 부를 것이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 그렇듯이 '바람의 벽'을 지날 때마다 이루지 못한 우리의 로망이 생각날 것 같다. 그렇게 '바람의 벽'은 우리 집의 한 부분이 되어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이라는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