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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Mar 09. 2020

집이 아닐 때

토목과 건축 사이


쉽게 말해서 토목은 지붕이 없고, 건축은 지붕이 있다고 생각하면 돼!


토목공학을 공부한 옛날 남자 친구는 토목과 건축의 차이를 묻는 나에게 이렇게 설명했었다. (집 짓다가 소환한 엑스 남친이라니ㅎㅎ) 그 오빠의 말에 의하면 2,3호 집은 지붕이 덮이면서 비로소 건축물이 되었고, 우리 집은 지붕이 덮이기 전이니 아직 건축물이 아니다.


아는 언니는 친구들과 나란히 집을 지을 때 늘 자기 집을 마지막에 작업해서 현장소장에게 짜증을 냈었다고 했다. 맨 마지막에 작업하면 작업자들이 지치기도 하고, 빨리 마무리하고 가려는 심리가 발동하여 대충 하게 된다는 것이 언니의 논리였다. 그런 말을 들었는데도 웬일인지 내 마음은 느긋하다. 바로 이 풍경 때문이다.


지붕 덮이기 전 가장 아름다운 풍경

  


1층 다이닝룸에서 계단 보이드 공간을 통해서 바라보는 2층은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다. (물론 2019년 3월 8일 2시 기준) 나에겐 보이지 않는 공간을 상상하는 능력이 없어서 설계 당시엔 무척 애를 먹였는데,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천하의 말썽꾸러기가 효자가 되어 나타난 셈이랄까ㅎㅎ


수직과 수평이 교차한다. 박공지붕의 사선이 지나간다. 날씨와 빛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명암을 만들어낸다. 어떻게 보면 매우 역동적이고 한편으로는 정적감이 감돈다. 물론 헛소리지만, 이 풍경을 소유하고 싶어서 지붕을 덮고 싶지 않을 정도로 오늘은 특히 조형적으로 매력적이었다. 지붕이 덮이면 이 느낌은 사라지고, 전혀 다른 느낌이 될지 모른다. 사라지기 전에 많이 봐두자며 넋을 놓고 있는데 그 안으로 딸이 들어왔다.


엄마! 내가 큰 방 쓸까? 오늘 보니까 이 방이 더 마음에 드네."

 
"응, 그래도 돼. 지금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어.
살면서 정하면 되고, 살면서도 많이 바뀔 거야."



2층에는 "문이 없는" 큰 방이 하나, "문이 있는" 작은 방이 하나 있다. 시공 견적을 조정하면서 문을 죄다 없애 버렸는데, 곧 사춘기가 시작될 딸을 위해서 작은 방에만 문 하나를 남겼었다. 하지만, 오늘 딸은 "문이 없는" 큰 방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또 바뀔테지만 인심 쓰는 척 하면서 그러라고 했다. 사실 난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니 솔직히 나도 이 집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 이 집에서 우리의 삶은 불확정적이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우리 집은 기능과 형식이라는 전형성을 크게 벗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안하지도 않다. 용도를 정하지 않은 공간은 모든 것이 가능하기에...   


나는 1층, 딸은 2층에서 우리는 아무런 장애없이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건축가들도 의도했듯이 이 빈 공간은 우리 가족의 소통 통로가 될 것이다. 그 소통은 말로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어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요소, 냄새와 소리, 소음과 정적까지도 우리 가족 소통의 매개가 될 것이다. 주방에서 시작된 요리하는 냄새는 2층에 있는 딸을 내려오게 만드는 신호가 될 것이고, 보이드를 통해 공명하는 딸의 피아노 소리는 늦잠 자는 나를 깨울 것이다. 우연성, 가변성, 무한한 잠재성을 가진 이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 이 공간을 통해서 우리는 자유롭게 만나고, 섞이고, 충돌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난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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