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엇이든 씁니다 Mar 17. 2020

행복은 크기 순이 아니잖아요

집을 짓다 보면 스스로 자꾸 하게 되는 질문

예산이 기준이 된 다음부터는 우리는 내려가는 일 밖에 없었다. 창호를 바꾸고, 지붕을 바꾸고, 문을 바꾸고, 이제 바닥까지 왔다. 원래 강마루로 되어 있던 것을 예산에 맞추려면 강화마루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강화마루로 할 바에는 하우스 데코타일로 해달라고 했고, 시공 소장님은 돈을 조금 더 써서 강마루로 하라고 권했다.



그동안 큰 미련 없이 쭉쭉 잘 내려왔던 나지만, 바닥 앞에서는 멈칫했다. 다른 건 몰라도 바닥은 마루로 하고 싶었다. 2호 집이 강마루에서 원목마루로 바꿨다고 하니, 원목마루는 못 할 망정 강마루 정도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돈 좀 더 들이더라도 강마루로 바꾸자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이 완강했다. 낯선 풍경이다. 보통은 남편은 좋은 걸 하고 싶어 하고 내가 뜯어 말린다. 남편의 논리는 원목마루가 아닐 바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요즘에 나오는 온돌용 하우스 데코타일도 잘 나와서 괜찮다는 것이다. 남편이 완강하니 더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마루에 대한 미련이 한 방에 사라진 건 아니었다. 친정 엄마도 옆집은 좋은 걸 하는데, 너흰 자꾸 다운 그레이드 해서 괜찮겠냐고, 강마루로 하라고 했다. 말은 괜찮다고 하면서, 겉으로는 쿨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사실 원목마루가 많이 부러웠다. 마음을 달래는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해 본다. 마루가 나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할까? 좋은 마루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그러면 역으로 내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일까? 요즘엔 주말 아침에 온 가족이 반려견 여름이와 산책 갈 때 가장 행복하다. 남편이 여름이와 함께 뛰거나 걷고, 나는 딸과 천천히 뛰어서 습지공원까지 간다. 거기서 여름이를 실컷 만져주고, 백로와 오리 구경을 하면서 멍 때리다 집에 와서 커피 한 잔 마시면 그 기분이 일주일 내내 간다. 그리고 취향이 제각각인 우리 가족이 어쩐 일로 취향이 맞는 프로그램을 발견하고, TV 앞에 대동 단결할 때도 좋다.


볕 좋은 날 빨래해서 널고 햇볕에 빨래가 빳빳하게 잘 말랐을 때, 봄볕 아래 봄나물 캘 때, 음악 크게 틀어놓고 청소할 때, 남편이 웬일로 알아서 설거지하고 쓰레기 치울 때, 밤늦게 혼자 영화 볼 때, 딸이 기분 좋아서 춤출 때, 엄마와 통화할 때,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밥 먹고 차 마시고, 술 한 잔 하면서 험담도 하고 고민거리도 나눌 때 행복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루와 나의 행복은 아무 상관이 없다.


집을 짓고 있지만 집(의 크기)과 나의 행복도 큰 관련이 없다. 친정 엄마와 내가 공통적으로 꼽는 가장 행복했던 때가 비좁은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한 이불 덮고 살았을 때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너무 행복하다. 방바닥에서 곰팡이 냄새 올라오고, 천장에선 쥐 몰려다니는 소리가 들리고, 외풍, 웃풍(그땐 우풍이라고 했다)이 세서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발이 시려도 좋았다. 그런데 고작 마룻바닥에 왜 이렇게 미련이 남는 걸까? 나 스스로 집 짓기를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도 닦기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내 수련이 한참 부족한 탓이다. 갈 길이 멀다. 더 정진하자!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막걸리 한 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