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소설 <종이달>에 대한 스포가 들어있습니다 *
나는 책 읽는 것이 좋다. 책을 읽어서 내 시야가 넓어지는 것이 좋다. 내가 태어난 나라, 내가 사는 환경, 내가 하는 일, 내가 만나는 사람들 속으로만 내 사고가 국한되지 않는 것이 좋다. 세상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 저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좋다. 내가 경험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좋다. 생각이 딱딱하게 굳으려고 할 때, 책이 내 머리 속을 반질반질하게 어루만져 주어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다.
또 책은 때때로 내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거나 내가 가야할 방향을 결정해주기도 한다. 고민하거나 주저하고 있던 문제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해주기도 한다. 감정이나 상황에 휩싸여서 내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그곳에 매몰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주기도 한다.
최근 나에게 그런 책이 <종이달>이었다.
<종이달>의 주인공 우메자와 리카는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던 카드회사를 결혼을 계기로 그만두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간다. 그러나 리카는 가정주부의 삶에 금방 무료함을 느꼈고, 아이를 가지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아 남편과의 사이도 멀어지게 된다.
하루하루는 다시 지루해져 갔다. 색깔 예쁜 도시락을 만들고, 아침 식사를 차리고 마사후미를 배웅하고, 텅 빈 집을 청소하고 다닌다. 한 주에 한 번 요리교실에 가서 배운 것을 며칠 안에 그대로 만든다. 빨래를 널고, 이불을 널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점심을 먹고, 저녁 메뉴를 생각하여 자전거를 타고 슈퍼에 간다. 텔레비전을 켜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영상이 매일같이 나왔다. 리카는 전혀 흥미 없는 그 영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결혼 초에는 아무런 의문도 없이 하던 일이 점점 색이 바래지고, 마치 영상 속의 장벽처럼 멀리 느껴졌다. 주부인 나는 나의 일부밖에 되지 않는다. 리카는 일찍이 직장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메자와 리카는 내 속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무채색의 나날을 보내던 리카는,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에 은행에 시간제로 취직해 일하게 되고, 업무를 하며 조금씩 성취감을 느껴가던 리카는 일하는 도중에 젊은 대학생 고타를 만나게 된다. 리카는 고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끼고, 고타와 어울리기 위해 고객의 돈을 조금씩 빌려쓰게 된다. 나중에 갚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돌려 쓴 고객의 돈은 어느새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게 되고, 리카는 결국 고객의 예금증서를 위조하기 시작한다.
결국 마지막에 리카의 행위는 발각된다. 그러나 나는 리카가 잡히느냐 빠져나가느냐 보다는 리카가 고객의 돈에 손을 대기까지의 과정이 인상깊었다. <종이달>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리카의 삶을 보고 답답함이 느껴질 것이다. "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얘기하지 않지? 일이 재미없으면 그만둬, 아이를 갖고 싶으면 남편에게 확실하게 얘기해, 부부관계가 불만이라면 남편에게 토로하거나 이혼을 하면 되잖아. 불륜관계를 유지하려고 횡령을 하다니 사리분별이 제대로 안 되는 사람이네." 그러나 과연 리카의 상황을 나와 관련없는 특수한 상황인 것처럼 바라볼 수 있을까.
주목해야 하는 것은 리카가 왜 그렇게까지 고타와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었는지, 그리고 그 수단이 왜 돈이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리카는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이 없었다.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던 회사는 결혼을 하게 되면서 그만두었다.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부부사이 문제도 남편과 터놓고 얘기하지 못했다. 이만하면 좋은 남편이지, 자신을 다독이면서 참기만 했다.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적극적으로 욕구를 표현하는 자신의 모습을 싫어했기 때문에 자녀 계획을 상의하지도 못했다. 일을 구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 또한 친구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고타와 있을 때 리카는 달랐다. 고타는 돈이 없는 젊은 대학생이었고, 리카는 용돈 수준이지만 수입이 있는, 자리 잡은 어른이었다. 리카는 고타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다. 고타와 있을 때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리카가 결국 원했던 것은 돈이 아니었다. 리카는 주체적인 삶을 원했다. 그러나 리카는 그것을 몰랐고, 주체적인 삶에 대한 갈망을 고타에 대한 사랑으로 착각했다.
리카는 자신의 삶에서 지금 결핍된 것, 자신이 갈망하는 것, 자신이 어떻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나도 리카처럼 내 답답함, 무기력함, 때로 나타나는 삶에 대한 분노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때가 더러 있다.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을 때, 그 공허함을 해소하려고 이것 저것 시도해 봐도 어쩐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이 공허함을 메꿔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에, 더 절박하게 어떤 것에 매달릴 때가 있다. 리카처럼 책 속에 있는 인물이거나 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이라면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해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상황일 때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근본적인 이유는 모른 채 공허한 구멍을 메꾸기 위해 다른 것에 집착하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도 무수히 찾을 수 있지 않은가.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아들과 며느리의 관심에 집착하는 사람, 가정에서 인정을 받지 못해 회사 안에서의 입지에 집착하고 직원들과의 관계에 집착하는 사람, 사랑과 관심에 대한 목마름때문에 연인관계에서 상대방보다는 관계 유지 그 자체에 집착하는 사람, 끈끈한 유대관계 혹은 소속감에 대한 갈망으로 이단 종교 집단에 집착하는 사람. 리카에게 돈 밖에 없었던 것처럼, 나에겐 회사밖에 없어, 나에겐 너밖에 없어, 나에겐 종교밖에 없어, 나에겐 권력밖에 없어, 하며 그 수단이 나를 채워줄 것처럼 절박하게 매달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쯤되면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갈등이 자신도 모르는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잘못된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이런 '집착'이 한 순간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리카가 처음부터 횡령을 목적으로 고객의 돈에 손을 댄 것이 아니듯이, 이러한 자기 파멸의 길은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는 일상 속의 작은 선택들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무심코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말, 무심코 하게 되는 행동, 또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하는 행동이 잠깐의 짜릿함과 해방감을 느끼게 해준다면, 우리는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되고, 그것이 결국 나의 생활 패턴을 형성한다. 점점 그 패턴에 둔감해지다 보면 무엇때문에 이렇게 사는지도 모른 채 내가 만들어 놓은 틀이 무너져버리지 않게 집착하고 아등바등하며 살게 된다.
결국엔 내면이 충만한 상태로 살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주체적으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원하는 사람인지, 결혼을 해야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인지, 혼자 사는 게 맞는 사람인지. 나는 아이를 원하는 사람인지, 아이보다 내가 중요한 사람인지,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지, 도전하는 삶을 원하는지, 타인의 인정이 중요한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내가 기분이 안 좋다면, 공허함이 든다면, 무기력하다면, 우울하다면, 답답하다면, 숨이 막힐 것 같으면,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알아야 한다. 어느 순간, "어, 나 요즘 이상한 것 같은데."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것 맞나?" "뭔가 잘못된 것 같아" 하는 기분이 들 때,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감정을 묻어두고 별 것 아닐 거라는 마음으로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안주하면, 책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던 리카의 모습이 되고 말 것이다. 회사에서도, 결혼해서도 무기력했던 리카가 "이만하면 괜찮은 회사지" "이만하면 좋은 남편이지"하며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의구심을 그대로 묻어둘 때, 독자들은 안타까워 하지 않았는가. 책 속으로 들어가 리카를 보듬어 주며, "이건 네가 행복해지는 길이 아니야. 다시 생각해봐."라고 해주고 싶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