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때문에 힘들다', 하는 말들 중에 유독 결혼과 육야문제에는 나는 엄격했다.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고 나서 하는 신세한탄이 듣기 싫었다. 집에 일찍 가면 애를 봐야 하니까 늦게 들어가고 싶다느니, 결혼하면 자유가 없어진다느니, 부부끼리는 가족이니까 손 잡는거 아니라느니, 애 때문에 산다느니 하는 말 있지 않은가. 왜 저렇게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까 생각했다. 자기가 좋아서 했으면서. 자기가 선택한 거면서.
아내나 가족을 흉보거나 웃음거리로 만드는 남자들을 보면, 누구보다 결혼에 절실했던 사람들이면서 무슨 말이 저렇게 많은지, 그럼 평생 혼자 살지 결혼은 왜 해서 엄한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지, 화가 났다. 남편과 아이때문에 힘들다고 매번 투덜거리는 여자들을 봐도, 그럼 결혼을 왜 했냐고, 애는 왜 났냐고 되묻고 싶었다. 그럼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잘 파악했어야지, 독박육아를 하는 게 싫었으면 남편하고 헤어지던가 애가 생기지 않도록 했어야지.. 내 생각의 화살은 같은 여자에게도 돌아갔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내의 잔소리가 그렇게 싫어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면 이혼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남편이 육아에 참여하지 않으면 남편이랑 담판을 지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상황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양, 매번 툴툴거리는 말만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했다. 왜 저렇게밖에 살지 못할까, 그렇게 오만하게 판단했다.
예전에는 남편과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예전보다 더 가깝게 1년 정도 살고 나니 남편과 나는 다른 점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낀다. 제일 중요한 문제를 놓고 보자면, 나는 아이를 원하지 않고 남편은 아이를 원한다. 이 점만 해도 내가 얼마나 모순덩어리인 줄 알겠는가. 내 논리에 따르면, 아이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면 결혼하지 말았어야 한다. 심지어 결혼 전까지도 아이에 대한 생각이 달라, "우리 어떡하지?" 하다가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서로 "그냥 묻어두자"하고 모른척하고 결혼을 했더랬다. 성격적인 면에서도, 남편은 정말 대한민국의 평범하고 성실하고 모범적이고 현실순응적인 남성 생명체인데에 비해, 나는 '모든 사람이 자기 맘대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모토 아래 현실의 모든 체제에 불만을 가지며 매 순간 의문을 제기한다. 남편은 웬만하면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주변에 맞추는 반면에, 나는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내 생각은 이미 저 멀리 가 있는데 아직 저 뒤에 머무르고 있는 남편을 볼 때는 답답하기도 하고, 내 기준에는 당연한 것들을 남편은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너무 "급진적이다"고 말할 때는 내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랑 7년이나 사귀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말했던 내 사고방식에 따르면, 그럼 나도 프로포즈를 받았을 때 "너와 나는 너무 다른 것 같아. 나는 아기 낳을 생각도 없으니 우리는 결혼하지 않기로 하자."고 분명히 의사표현을 했어야 맞는 것 아닌가. 앞으로의 갈등을 무의식적으로라도 예상했으면 그런 선택을 하면 안됐던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 남편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고, 결혼하자는 제안에 "다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덥석 그러자고 했다. 남편은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깊게 얘기하지 않았고, 그냥 지금이 좋았으므로 복잡한 생각은 묻어버리고 신나게 결혼 준비를 하고 집을 꾸몄다.
그럼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니까 지금이라도 이혼해, 라고 하면 그렇게는 하지 못하겠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인연을 한순간에 끊어내는 것이, 실제로는 그렇게 쉽지가 않은 것이다. 가끔은 남편과 얘기가 통하지 않고 사고방식이 평행선을 달려 힘들긴 하지만, 나도 남편을 좋아하고 남편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남편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즐겁고 편하기 때문에 계속 같이 지내고 싶다. 상대방이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관계를 무 자르듯 바로 끊어낼 수 없다는 것을, 나를 힘들게 해도 인연을 유지해나갈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아는 것이다.
내 기준으로 보면 나에게도 돌아오는 화살이, 결혼 말고도 무궁무진 할텐데. 그럼 회사가 그렇게 싫은데 왜 들어갔어? 그렇게 불평할거면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찾으면 될걸. 모든 일에, "너가 선택했는데 왜 불평해? 왜 앓는 소리해?"라는 손가락질은 한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을까. 세상만사 다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로이 알게될 때, 아직도 인생을 다 모르는구나 싶다. 엄마 아빠나 어른들 앞에서 매번 큰소리만 치던 나였는데, 얼마나 어리고 바보같아보였을까. 에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