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된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애완동물이다. (5년만의 신혼여행, 장강명)
그러나 인생에는, 부잣집에서 태어났건 아니건 간에, 그리고 부모가 뭐라 하건 간에,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벌여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인생이 아니다. 그건 사는 게 아니다. (5년만의 신혼여행, 장강명)
나름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는 지금,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구절을 가끔 떠올린다. "이제 와서 무슨 사서 고생을 하려고.", "이대로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냥 익숙한 대로 살자."고, 내 안의 수많은 '나' 중의 하나가 얘기할 때, 이 구절을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인생이 펼쳐질지 보이지 않고 불안함에 결정을 내릴 용기가 나지 않을 때, 생각한다. 책에서 얘기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벌여야 할 때"가 지금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차갑고 냉정한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남들이 뭐라고 얘기하든 자신만의 길을 가라고 얘기하고 북돋아 주는 책의 저자들은, 그 책을 출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결실을 맺은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납득할 만한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가기로 결정할 때, 그 순간에는 주변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꼭 어떤 성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안정적인 길을 포기하면 무조건 힘들다, 실패한다는 말이 아니다. 여기만 벗어나면 낙원이 있을 것이라는 나의 막연한 기대감이 현실의 벽에 부딪혔을 때, 내가 절망하고 다치지 않을 최소한의 방패막이다.
퇴사를 하고 유투버로 성공했다는 사람, 퇴사하고 사업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사람들의 성공 신화를 접하며, 저 사람도 했는데 나도 잘 되겠지 하는 믿음을 가지지 말자고 다짐한다. 거대한 조직 밖은 전쟁터이며, 내가 원하는 일을 한다는 명목 하에 우아하게 먹고살 수 있으려면 물 밑에서 발을 미친 듯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로 한다. 내가 각오한 것보다 더 쉽지 않을 것이며, 어려움이 닥칠 것이다. 수입이 몇 년 동안 없을 수 있다. 패기 있게 나갔으나, 이렇다 할 성과가 없을 수도 있다. 그에 비해 조직에서 버텨 수입이 늘고 직책이 올라간 지인들의 모습을 부러워할 수도 있다. "쟤는 박차고 나가더니 별 볼 일도 없네"하는 시선이 날아와 박힐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지금과는 다른 일을 하면서 내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운 좋은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지만, 지금은 최상의 시나리오보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대부분 현실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정신을 붙잡을 수 있도록 미리 마음을 단련한다.
마음을 단련해야 할 정도로 미래가 불투명한 길, 그런 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선택을 하기로 한 이유를 다시 생각하고 명심한다. 이유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이러저러한 어려움이 있으니 그냥 살던 대로 살래?"하고 나 자신에게 물으면, 대답은 시원치가 않다. 지금 내가 가진 조건에 나름 만족하고 이렇게 살아보자고 마음을 다잡아도, 나는 몇 개월 후 또는 몇 년 후, 이 고민을 똑같이 다시 할 것이다. 그러면 생각할 것이다. 차라리 그때, 하루라도 젊을 때 뭐라도 할 걸.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는 후회와 내 선택은 옳았다는 자기 합리화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갈 것이다.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도,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에도 생각할 것이다. 왜 그때 무언가를 하지 않았지? 왜 그때 '이 정도면 괜찮다고' 내 마음을 위안하며 살았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니까 하소연만 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그대로 두고 그때그때 스트레스만 풀려고 하면 어느 순간 터져버릴 것이다. 이미 내 삶의 길은 정해져 버렸다고 불평불만만 하고 싶지 않다. 주체적으로 변화시키고 싶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나는 놀라우리만큼 관심이 없다. 너무나도 관심이 없는 나머지, 일이 잘 되든 안 되든 나에게 아무 타격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수준에 이른 데는 내 문제도 있지만 업무의 성격도 한 몫했다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다. 내가 하는 일은 최소한 네, 다섯 명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이고, 그 네, 다섯 명 중 나는 맨 아래에 위치해 있다. 나는 결정권이 없으며, 타인의 지시에 의해 일한다. 의견을 낼 수도 없고, 의견을 낸다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 일을 스스로 이리저리 만져 나가거나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는 속수무책이나, 그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돌아온다. 아무런 결정권도 없는 나이지만 어려운 순간에 해결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은 결국 나이다. 그런 순간들은 예상치 못하게 온다. 평안한 날이 되겠지, 하며 출근한 날에 갑자기 벼락이 떨어지기도 하며, 하루의 시작을 두려워하며 출근한 날에는 의외로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 버리기도 한다. 하루하루를 예측할 수가 없어 마음을 졸이고, 하루가 끝나면 오늘도 살아남았구나, 잘 버텼구나 하며 안도한다. 이런 환경에서 휩쓸리다가는 내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나름의 방어기제로 모든 업무에 나의 영혼을 분리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건 나와 상관없다고. 그래서 칭찬을 받아도 기쁘지가 않고, 질책을 받아도 마음에 생채가 나지 않는다.
"일이 다 그렇지 뭐."라고 위안하며,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취미생활을 하며 나를 찾으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일 뿐 마음속의 구멍은 메워지지 않는다. 내 시간은 짧으며, 일을 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하루하루 버텨내면 일주일이 끝나 버린다. 이러다 보니 "나 왜 살지?"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찾아온다. 그렇게 일해서 수입 걱정 안 하고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지 않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무언가가 충족되지 않는다. 인생을 사는 것 같지가 않다. 그렇게 한 달 번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즐기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베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려 하는데도, 마음 한편이 항상 무겁다. 아무런 애정이 없는 일을 하며 시간을 죽이며 살고 싶지 않다. 차라리 단순 노동을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에 이유가 의미가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열과 성을 다해서 일을 하고, 그걸로 번 돈으로 생활하고 싶다. 배부른 소리일까.
충동적으로 결정하고 나서 나 자신을 탓하고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충분히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아니, 어떤 길을 선택해도 후회는 하겠지만,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다시 돌아가도 나는 그 선택을 하겠다"고 나에게 당당할 수 있기 위해 깊이 살펴본다.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하려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을 안 할 이유는 없는지. 어떤 길을 가도 나를 보호해 줄 방패막은 없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없으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지고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에 흔들릴 따위도 없으며, 그와 동시에 그 결과를 받아들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