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서 쏟아지는 훈수에 갈팡질팡할 때
얼마 전 읽은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인상 깊어 기록해 놓은 구절이 있었다.
「"바깥 공기를 마시며 자유롭게 이동할 때 탄생하지 않은 생각은 그 어떤 것도 믿어선 안 된다." 니체가 말했다. 우리는 손으로 글을 쓴다. 발로는 더 좋은 글을 쓴다.」
「개인적이지 않은 통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빌려온 진실은 빌려온 속옷만큼이나 잘 맞지 않으며 그만큼 기분 나쁜 것이다. 몸소 체험한 개인적 철학의 목표는 추상적 지식이 아니라 개인적 진실이다. 어떠한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는 것. 여기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발로 뛰면서 사고하고 몸소 통찰하고 깨닫는 것, 그것을 오늘 나는 몸으로 경험했다.
나는 보통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는 편이다. 여기서 솔직하게 얘기한다 함은 즐겁고 좋은 무난한 얘기 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고민이나 생각, 나를 요즘 가장 골치아프게 하는 것들을 모두 오픈한다는 뜻이다. 가끔 자신에게 약점이 될 만한 것들은 얘기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 얘기를 듣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므로 특별히 '이건 말하면 안 될 것 같아' 하며 숨기는 것들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최근의 이슈는 달랐다. 나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큰 결정을 앞두고 있었고, 평소 습관대로 나는 그 상황을 사방팔방 떠들고 다녔다. 굳이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민을 하는 내 모습도 나 자체이므로, 별로 부끄러울 이유도 말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몇몇 사람들은 역시나 '그렇구나'로 끝나지 않았다. 제각각 자신의 의견을 내게 얘기했다. 이런 현상은 별로 특별할 것이 없었는데, 다만 이번이 다른 상황과 달랐던 것은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인생의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한다고 해보자. 그리고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 퇴사하고 시험 준비하려고." 하고 다닌다고 해보자. 이런 종류의 발표(?)는 '나 헬스 등록하려고'나 '나 다이어트하려고' 와 같은 선언과는 다르다. 인생의 큰 방향을 틀어버리겠다는 종류의 선언이다. 이런 중대발표를 듣고 나면 대부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강한 의견을 내지 않지만, 나와 가깝게 지내거나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 가치관을 기준으로 의견을 마구 내놓기 시작한다. '그러면 후회한다'부터 '시험 붙어도 고생이다', '그럼 그동안 생활은 어떻게 할거냐', '너무 위험한 거 아니냐' 등등. 시험 준비라는 예시를 들어 설명했지만, 갑자기 사업을 하겠다거나 이민을 가겠다거나 하는 다른 종류의 결정에도 가족, 친지, 친구들 등 지인들의 수많은 훈수가 폭탄처럼 쏟아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인생을 산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그렇게 크나큰 결정을 할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사방에서 날아오는 훈수들이 낯설지 않았을테니까. 아니면 그 땐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냥 내가 가볍게 무시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머리가 컸다고 '나중에 후회할텐데'라거나 '신중하게 생각해'하는 말들이 쉽게 나를 지나치지 못하고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내 확신과 자신감을 조금씩 조금씩 깎아버린다. 의욕에 활활 불타오르던 나도 점점 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걸까? 후회하면 어떡하지? 남들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지킬 앤 하이드처럼 하루하루 자아가 변한다.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자아와 '어떡해, 나 잘못 선택했나봐'하는 자아가 시시때때로 번갈아가면서 튀어나온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러닝을 했다. 뜨겁던 여름이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햇빛은 화창한, 달리기 좋은 그런 날이었다. 니체가 생각을 하려면 몸을 움직이라고 했던가. 뛰기라도 하면 복잡한 생각이 정리될까 하며 밖으로 나갔다. 뛰었다. 그리고 알았다. 니체의 말은 맞았다. 우리는 발로 움직일 때 더 좋은 성찰을 하고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내 머리는 나도 모르게 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말이 틀려? 아니, 오히려 다 맞는 말이야. 그런데 그 조언들을 다 들을 수 있어? 아니, 다 충족시키지는 못해. 그럼 그 사람들의 말은 맞고 너의 생각은 틀려? 아니,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지. 그럼 어떻게 해야해? 조언은 조언일 뿐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해.
사람들의 생각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동시에 모든 생각은 각자의 가치관에 대입하면 옳다. 그런데 그 말들이 모두 옳기 때문에 나에게 더 혼란을 준다. 모두 옳은 말인 동시에 나에게는 모두 맞지 않은 조언일 수 있다. 결국 정답은 없고 내가 결정하고 선택하고 그리고 후회하더라도 과거에 묶여있지 않고 그 결정을 끌어안고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답이 나오지 않고 머리만 아파 몸이나 움직이자 하고 아무 생각없이 달렸는데, 움직이는 내 몸은 내 머리까지 움직였다. 달리고 나니 무언가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힘이 들고 숨이 차 헛구역질을 꽥꽥하고 있었지만 머리 속에서 무언가 명확해진 느낌이었다.
가끔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을 듯 하다. '나는 남들이 뭐라 해도 아무 타격도 없다', '나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간다' 하는 사람들이 아닌, 나처럼 타인의 의견에 갈팡질팡 흔들리고 휘둘릴 것 같은 사람이라면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무는 게 때로는 좋을 수도 있겠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봐도 어차피 그도 타인일 뿐, 내 인생은 내가 고민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필터링 없이 모든 사람에게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지금까지 보여줬다면, 이제부터는 '나만 간직해야 할 생각'을 조금씩 구분해 나가야 하나 싶다.
덧붙여 생각이 복잡한 분들에게는 걷기나 달리기를 강력하게 추천하겠다. 니체의 이론은 나의 임상실험 결과 비교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