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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여니 Jun 02. 2022

부러우면 지는 거라도 그냥 부러워하련다

  남편은 요즘 <뜻밖의 여정>이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본방송을 놓쳐서 재방송을 보려고 하는 남편이 재밌다며 같이 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불쑥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나 그거 보고 싶지 않아. 너무 부러워서."


    이번에는 내 솔직하고 찌질한 감정을 써보려고 한다. 내가 찌질하다는 것을 인정이라도 해야지 그나마 덜 찌질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자신이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는 일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이 부럽다. <뜻밖의 여정>에 등장하는 배우 윤여정 씨는 물론이고, PD와 작가 등 방송국 직원들, 윤여정 씨의 미국 활동을 지원하는 현지 사람들, 그리고 미국에서 자리를 잡아 생활하고 있는 윤여정 씨의 지인들까지. 그들은 자신이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낸다. 그들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 대한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그 일로 먹고 살만큼의 충분한 수입을 창출해내고 있다. 최근 <나 혼자 산다>에서도 개그우먼 박나래 씨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생긴 대로 살아보겠다고 낑낑대고 있지만 아직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나는 그들이 마냥 부럽다. 돈을 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면서 자아실현까지 해낼 수 있는 그들을,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이 있었을지는 생각하지 않은 채, 미성숙하고 찌질한 나는 그저 부러워할 뿐이다.




  단순히 연예인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화려하게 비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일이든 자기가 관심이 있고 잘하고 싶어 하는 일로 돈을 버는 모든 행위가 부럽다. 그것이 카페를 운영하는 일이든 노래를 하는 일이든 춤을 추는 일이든 공사장에서 건물을 짓는 일이든 심지어 주식으로 돈을 버는 일이든 모두 그렇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돈을 번다는 점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고 해내면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끼는' 일로 돈을 번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삶의 질에 정말 많은 영향을 미치며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지를 좌우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죽여야 하는 껍데기일 뿐인 일이었지만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것, 나에게 맞는 방식대로 마음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최소한의 수입도 보장되지 않을 수 있는 것.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정글 같은 사회에서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있을 만큼의 궤도에 오른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생각한다. 물론 이 시점에서도 나는 그들이 거쳐야 했던 피 땀 눈물이 배어있는 역사는 가볍게 넘겨버리고 만다. 결과만 보고 침을 흘린다. 그렇다. 나는 이렇게나 찌질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하며 우는 소리만 하고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여기서 더 나아가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성공을 깎아내리면서 내 능력은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다는 자기 연민의 굴레에 빠질 것만 같았다. 단순히 부러워하는 것이 찌질한 것이라면 부럽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남들을 폄하하고 자기변명만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찌질함이다. 못된 놈의 끝판왕이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시인하기로 했다. 부럽다고.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 기준에 충분한 돈을 벌고 싶다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만족하는 것도 정말 필요한 덕목이지만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억지로 덮어놓고 자신을 속이는 것은 옳지 않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것 같지만 숨겨진 욕망은 계속 내 안에 남아서 언젠가는 질투와 시기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지금의 마음이 미운 모습이 되기 전에 차라리 부러워하자고 다짐한다. 그들이 그 수준까지 다다를 때까지 그들이 어떤 힘든 결정을 내렸는지, 어떤 마음으로 도전했는지, 어떤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를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발전시키자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부러우면 지는 거지만 그래도 나는 대놓고 부러워하련다.


  나에 대한 확신은 아직도 없다. 매일매일이 나와의 싸움이다. 어느 날은 해낼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어느 날은 내가 가질 수 없는 열매를 넘보는 것 같은 기분에 바닥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을 지키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 그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한 번 더 힘을 내본다. 내가 너무나도 부러워 마지않는 이들이여. 내 앞에 나타나 줘서,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이 되어줘서 감사하다. 그대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그대들처럼 되고 싶어서 주저앉지 않고 힘을 낼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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