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요가 수련에는 요가를 처음 하시는 것 같아 보이는 분이 계셨다. 운동을 막 시작하셨는지 동작 하나하나를 소화해내는 것이 조금 버거워 보였다. 내 수련이나 집중해서 할 것이지, 이쪽저쪽 어떻게 하고 있나 살피는 것은 쓸데없는 오지랖일 수도 있겠다.
요가는 초심자가 접근하기에 쉽지 않은 운동이다. 일단 유연성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지 않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동작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심지어 수련을 시작할 때 바르게 앉는 것부터 힘이 든다. 대개 다리를 쭉 펴고 상체를 앞으로 숙이는 자세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요가 새내기는 좌절하고 만다. 분위기는 또 어찌나 차분한지. 요가는 격렬하고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운동이라기보다는 명상에 가까운 움직임이어서, 한 동작에 오래 머무르며 호흡으로 채우는 정적인 분위기에 흥미를 잃고 금방 그만두는 사람들도 꽤 있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요가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되지만, 요가의 매력을 느끼기까지 넘어야 하는 장벽은 만만치 않다.
그날에도 그분은 참 많이 고전하셨다. 가부좌를 하고 상체를 비틀고 다리를 이리저리 접는 동작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잘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익숙하다는 듯이 몸을 연체동물처럼 접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 눈에 띄게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은 사람을 위축하게 한다. 의욕이 앞서 무리하게 되면 몸이 다칠 수가 있어 보통은 수준에 맞게 단계별로 지시를 해주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내 역량에서 벗어난 움직임을 해보겠다고 버둥대다 보면 작은 굴욕감이 밀려올 때도 있다. 평소 같았으면 내 수련에만 집중했을 텐데 나도 모르게 그분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날 수련은 다른 때보다 왜 더 어렵게 느껴졌는지. 다른 때보다 왜 더 길게 느껴졌는지. 이게 뭐 하는 걸까 싶어 다음부터는 안 나오시는 건 아닐지. 처음엔 모든 게 내 맘대로 되지 않지만 언젠가는 몸이 변화하는 순간이 분명 올 텐데. 이렇게 요가 중독자는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새 신자가 흥미를 잃고 떠나갈까 봐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걱정을 했더랬다.
하지만 그분은 나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힘이 빠져서 중간에 매트에 주저앉더라도, 그분은 계속 시도했다. 다리가 펴지지 않아도 부들부들 떨면서 다리를 펴보려고 노력했고, 스트레칭이 힘들어 잠깐 쉬었다가도 다시 도전했다. 계속 휘청거리면서도 멈추지는 않았다. 심지어 머리서기를 하는 시간에도 미리 포기하지 않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다리를 바닥에서 뗐다 붙였다 하며 연습을 했다. 비록 같은 공간에서 나는 머리서기를 꼿꼿이 하고 있었지만, 더 빛나는 존재는 그분이었다. 몸을 더 자유롭게 사용하는 사람은 나였으나 진정한 요가를 하고 있는 사람은 그분이었다. 익숙하게 해왔던 화려한 동작을 하는 것보다 잘 못할 걸 알면서도 시도하는 것이 더 어렵고 힘든 일이다. 100에서 101로 가려면 1퍼센트의 노력만 더하면 되지만 0에서 1로 가기 위해서는 100퍼센트의 힘이 필요하다.
언젠가 엄마와 산책을 하는데 힘들게 걸어가시는 할아버지를 보고 엄마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요즘 저런 분들이 눈에 들어와. 몸이 안 아픈 사람도 집 밖으로 나오는 게 힘든데 저렇게 걸음걸이도 성치 않은 분이 움직이겠다고 나오시는 게 얼마나 대단하니."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요가를 하면서 흔히 우리가 듣는 말 중 "어제의 나보다 변화한 내 모습에 집중하라"는 말은 이런 뜻이리라. "요가는 잘하고 못하는 게 없어요."라는 말을 들으며 '잘하는 사람이나 저런 말을 하지, 못 하는 사람은 매번 더 잘하고 싶다고.' 하며 삐딱선을 타는 내가 어딜 가서 진정한 요기니라고 할 수 있을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그곳에 존재하는 각자의 도약, 도전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을 이제는 발견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라며, 내일은 조금 다른 마음으로 매트 위에 서보고자 한다.
그분을 계속 보고 싶다. 다음에도 같이 치열하게 땀 흘리며 수련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