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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여니 Jul 06. 2022


그 나이에 대단하다는 말

  나는 나이에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을 만나도 그렇게 말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하지만 돈에 관심 없다고 하는 사람이 더 돈에 집착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이가 상관없다고, 지금 나이에 0.7을 곱한 것이 진짜 나이라고 얘기하는 내가 더 나이를 유독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얼마 전, 프리랜서 입문자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떤 분이 말했다. "저는 그런 로망이 있었어요.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경치를 보면서 우아하게 일하는 로망." 그 말을 듣고 웃다가 순간 생각했다. 정말로 실현해볼까? 왜 안 되겠는가. 동해나 제주도에 한 달 아니 최소한 일주일 만이라도 예쁜 숙소를 잡아놓고 작업하고 지내는 거다. 여행하듯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것 말고, 숙소에서 밥을 해 먹고 작업을 하고 낮잠도 자고 카페에 가서 바다를 보며 멍 때리기도 하고. 가끔 기분전환을 위해 주변을 산책하며 동네를 구경하기도 하며 여유롭게 지내고 오는 거다. 프리랜서의 장점은 평일, 주말의 구분이 없다는 것, 그리고 휴가를 내지 않아도 무한한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로망은 로망일 뿐이지만 지금 해보지 언제 해보겠는가. 새로운 계획이 생겼다는 생각에 나는 설레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당장은 한달살기를 실현하기 어렵게 되자 나는 조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내 나이 33살. 어떤 사람에겐 아기 같아 보이는 나이지만 어떤 사람에겐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나이. 어떤 사람에겐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나이지만 어떤 사람에겐 새로운 도전이 불가능한 나이. 나는 표면적으로 전자와 같이 생각했지만 내 무의식에서는 후자의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었나보다. '지금 안 가면 언제 가지? 나이 들어서 갈 수는 없잖아.' 하고 생각하는 동시에 나는 내 모순을 발견한다. 나이는 상관없다고 떠들고 다녔으면서 누구보다 나이라는 틀에 좌지우지되고 있는 게 나였다. 


  40살이 넘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사람에게 '그 나이에 대단하다'라고 말하는 것, 50살이 넘어 세계로 배낭여행을 가는 사람에게 '그 나이에 대단하다'라고 말하는 것, 60살, 70살이 넘어 학교에 가는 사람에게 '그 나이에 대단하다'라고 말하는 것 모두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발언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나이에 대한 편견을 담고 있는 말이다. 그 나이에는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데 당신이 특별한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40살에는 보통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50살인 사람은 배낭여행을 가기 힘들 것이라는, 60살, 70살인 사람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평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내 무의식에 담겨 있는 것이다. 

  연령대 별로 해야 하는 일이 정해져 있는 듯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그렇게도 싫어하면서도 나도 어느새 그 틀에 내 자신을 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각자 인생의 속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과할 정도로 떠들어 댔었던 나는 아마 견고해 보이는 나이라는 프레임이 사실은 두려워서 그것으로부터 나를 방어하고자 한 건 아니었을까. 지금 나이에 0.7을 곱한 것이 진짜 나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누구보다 한국 사회의 인생표를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너무나도 명백히 인식한 나머지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본 기사 제목이 떠오른다. <6070 언니들이 말한다, 오늘이 근육 만들기 딱 좋은 날이라고>. '나이가 들어도 근력 운동을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나를 보면서 나의 편견을 인정한다. 누구보다 어린 나이에 집착하고 편견에 갇혀있었다고. 어떤 나이에 무엇을 하든 의외인 것은 없다. '그 나이에' 라며 나이를 의식할 필요도 없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행위에 나이라는 필터는 필요 없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가는 것에 초조해하지 말자고 생각한다. 마흔 살이 되어도 쉰 살이 되어도 예순이 되어도 한 달 살기는 할 수 있고 그 때도 바다를 보며 프리랜서의 로망을 이룰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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