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 김태용(2014)

by 연잎

집.

나는 집이 있지만 집이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이 있고 동생과 아빠가 살고 있는 집이 저 멀리에 있다.

그러나 두 집 다 진짜 내 집이 될 수는 없다.


이 집.

그룹 홈 이삭의 집.

나는 이 집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내 나이 18살, 법적으로는 더 이상 이 집에 살 수 없다.

여기에서 나가면 갈 곳이 없다.

아빠 집으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신학교에 가야 하고 신부님이 되어야 한다.

신학교에 가면 숙식이 제공된다.

신부님이 되면 성당 사택에서 평생 동안 살 수 있다.

이것만이 내가 진짜 내 집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니 나는 그룹홈 엄마, 아빠에게 잘 보여야 하고 성당 신부님께도 잘 보여야 한다.

이렇게 폭신한 이부자리와 따뜻한 방이 제공되는 이 집.

깨끗한 옷을 주고

삼시세끼 다 먹여도 주는 이 집에서 나는 최대한 오래 살고 싶다.

최소한 신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여기에서 지내는 것이 최선이다.


친구들이 고아 새끼라고 놀리는 것쯤은 그냥 흘려들으면 된다.

어쩌면 난 고아보다 못한 새끼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있는데도 보육원에 올 정도면 고아만도 못한 것이다.

고아는 누가 자기를 버렸는지 모르나 나는 나를 서서히 버리고 있는 부모를 눈 뜨고 지켜봐야 한다.

나와 동생을 쓰레기통에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는 나의 부모를.


그러니 나는 어떻게든 이 집에서 버텨내려 했다.

가끔 방문하시는 신부님께 편지 인사도 자주 드렸고,

여기 엄마, 아빠께는 최선을 다해서 집안일을 돕고 착한 태도로 대해드렸다.

성적은 잘 안 나오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있다.

여기 엄마는 나를 이해하는 건지,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를 믿고 잘해주시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 아빠는 나를 늘 경계한다.

네가 과연 신학교에 들어갈 깜냥인지 모르겠다고 늘 나에게 말씀하신다.

여기 또래 남자애들 규율을 잡으려면 이렇게 엄격한 분도 계셔야 한다.

만약 아빠 없이 엄마만 계셨다면 여긴 진작에 개판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 아빠를 존경하지는 않지만 인정은 한다.


저번에 신부님께서는 신학교 추천서를 써주시겠다고 하셨다.

나의 절박함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눈물 나게 고마웠다.

공부를 도와줄 대학생 누나도 소개해주셨다.

이 누나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무려 서울대에 다니고 있다.


누나가 데려가 준 누가 어머님이 하는 식당은 작고 지저분하고 초라했다.

하지만 어머님은 초라한 분이 아니셨다.

거친 듯 당당한 말투.

자신감이 넘치는 분이었다.

아, 저런 엄마도 있구나.

누나는 어머니와 티격태격 친구처럼 장난을 쳤다.

어머님이 나더러 언제든 배가 허전하면 오라고 하셨다.

누나와 누나 어머니를 보니 나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공사장에 밥 나르는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 지방 이모 집에 가 있다.

엄마는 늘 아프다.

다치거나 그냥 아프거나.

아마 엄마는 다시는 아빠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같이 살자는 말도 하지 않는다.

엄마가 나를 먹여 살릴 방법은 길에서 구걸하는 것밖에 없을 것인데, 아마 안 할 것이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거둘 생각이 전혀 없다.

엄마가 갈 수 있는 그룹홈 같은 것도 없기에 엄마 또한 집이 없다.

누나는 진짜 엄마가 있어서 그렇게 공부를 잘할 수 있었나 싶다.

내 엄마와 아빠는 진짜 엄마와 아빠가 못 되는 사람들이다.

내 아빠와 엄마가 장애인인 것도 아니다.

사지 육신 멀쩡한 성인이다.

그러나 돈을 벌지 않는다.

일을 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없다.

아빠는 교회를 5곳이나 다니며 열혈 신자 연기를 하여 우리들의 장학금을 타내려 한다.

장학금이나 금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보는 부지런히 찾아다니면서 취업할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렇게 공짜 돈 받아내는 행위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그런 아빠가 창피하고 싫다.

아빠 집에는 먹을 것도 제대로 없다.

언제나 며칠씩 데워 박박 긁어먹는 찌개와 김치 쪼가리뿐이다.

돈은 항상 없다.

나에게 줄 용돈 또한 1원도 없다.

나도 돈이 필요하다.

차비도 필요하고 목마르면 생수라도 사 마셔야 한다.

가끔 만나는 동생에게 떡볶이 정도는 사주고 싶다.

창고에 있는 신발들은 부자들이 버린 것들이다.

말이 좋아 기부이지 그냥 남아도니까 우리처럼 불쌍한 애들한테 던져준 것이다.

나는 이것을 훔쳐서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언젠가 발각될까 봐 걱정이 될 뿐이다.

만약 발각된다면 나는 당연히 이 집에서 쫓겨날 것이다. 소년원에 가게 될 수도 있다.

나 같은 아이들은 초범이어도 더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아빠는 동생마저 이 그룹홈에 보내고 싶어 안달이다.

아빠는 나에게 동생을 떠맡기려는 것이다.

동생은 아직 중학생이다.

나는 동생을 책임질 능력이 없고 의사는 더더욱 없다.

그리고 동생이 여기에 와버리면 그 집마저 사라져 버린다.

그나마 있던 집마저 완전히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조만간 아빠가 막무가내로 여기에 쳐들어올 것 같다.


그건 정말 최악이다.

그런 상황이 오면 내가 품은 신부님이라는 꿈도 가루가 되어 날아가버릴 것이다.

아빠는 왜 내가 애써 찾은 이 집까지 걷어차지 못해 안달이지?

나는 왜 이렇게 부끄러운 아빠한테서 태어난 거지?

나는 집도 없이 길에서 떠돌며 아빠처럼 살게 될까?


부전자전,

피는 못 속인다,

아들 팔자는 아빠 닮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모두 다 나 같은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은 아무리 쥐어짜 봐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건 나더러 졸라 열심히 뺑이치라는 말로 들린다.


개천에서 용 난다?

이것 역시 내가 용이 될 거라는 말로 들리지 않는다.

네가 있는 거기가 바로 개천이라고 낙인찍는 말로 들린다.

나는 용이 될 생각도 능력도 가능성도 없다.

요즘 뭔가 불안하다.

아무래도 이 집에서 쫓겨 나갈 날이 임박한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또 어디로 가게 되지?

나는 또 어떤 일을 얼마나 더 겪어야 할까?


얼마나 더 무릎을 꿇어야

무엇을 더 훔쳐야

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되면 더 나아질 게 있을까?


어른이 되면 진짜 내 집이 생길 수 있을까?

- 배우 최우식의 유창한 영어에 감탄하여 그의 이력을 찾아보다가 알게 된 영화, [거인].

주인공 영재의 심리를 그냥 주욱 따라가 보았다.

나는 아직 아이들을 깊게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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