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오웰, 허진 옮김. 열린책들
1. 본명 : 에릭 아서 블레어
- 조지 오웰은 ‘에릭’이었다. ‘조지’보다 ‘에릭’이 더 어감이 좋다.
2. 에릭은 수재였으나 어린 시절 겪은 자존감 훼손이 만만치 않았다.
사실, 학교에는 세 계급이 존재했다. 귀족이나 백만장자 집안의 아이들이 소수 있었고, 평범한 교외의 부잣집 아이들이 다수였으며, 나처럼 성직자나 인도 공무원이나 생활고와 싸우는 과부 등등의 아들인 하류층이 약간 있었다. 가난한 아이들은 사냥과 목공 같은 ‘특별 활동’을 신청하지 말라고 권유받았고, 옷이나 사소한 소지품 문제로 수치를 겪었다. 예를 들어 나는 크리켓 배트를 갖지 못했는데, ‘너희 부모님은 그럴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학창 시절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345쪽)
장학생 반 학생들이 모두 같은 취급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샘보는 학비를 아낄 필요가 없는 부잣집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아버지 같은 태도로 농담을 하거나 갈비뼈를 찌르며 자극했고, 어쩌다가 연필로 머리를 톡톡 치기는 해도 절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회초리를 들지는 않았다.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가난하지만 ‘똑똑한’ 아이들이었다. 말하자면 우리의 뇌는 샘보가 투자한 금광이었으므로 이윤을 짜내야 했다. (344-345쪽)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지 않는 것이 영리(營利)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이의 식욕은 말하자면 종양과도 같아서 최대한 통제해야 한다는 샘보의 생각을 나는 대체로 받아들였다.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 우리는 식탁 앞에 앉을 때와 똑같이 배고픈 상태로 일어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금언을 반복적으로 들었다. (357쪽)
플립이 악수를 청하더니 작별 인사를 했다. 심지어 나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나 얼굴과 목소리에는 생색을 내는 듯한 태도가, 비웃음에 가까운 것이 있었다. 그녀가 작별 인사를 하는 말투는 ‘쪼그만 나비들’이라고 말할 때와 거의 똑같았다. 나는 장학금을 두 개나 탔지만 실패자였다. 성공을 가늠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였기 때문이다. 나는 ‘신분 높은 아이가 아니’ 었고, 학교에 명성을 가져다줄 수도 없었다. 용기도, 건강도, 힘도, 돈도 없었다. 심지어는 좋은 몸가짐도, 신사처럼 보이는 능력도 없었다. (385쪽)
-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에릭의 집은 중산층 가정이다. 현재 나와 남편이 꾸린 우리 가정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당시 에릭의 부모가 꾸린 가정이 영국 사회에서 차지한 위치가 거의 비슷할 것 같다. 에릭의 아버지는 식민지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그리고 그것뿐이었다. 귀족 가문이거나 교외에 영지가 있는 등의 부가적인 것이 없었다.
에릭이 다녔던 기숙 예비학교인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 이 계층은 서열상 바닥이었다. 오! 딱 이해가 간다. 만약 내가 두 아이를 제주국제학교나 리라초등학교 등 내로라하는 귀족 학교에 보냈다면 필시 하류층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대놓고는 아니어도 아이 스스로 하류층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데에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별장도 없고 저택도 없고 전용기도 없으며 심지어 집에 상주하는 도우미도 없으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명품 가방을 옷에 맞춰 바꿔 들거나 명품 슬리퍼를 깔 별로 질질 끌고 다니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당대의 기숙학교는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혹은 해리포터에 나오는 기숙학교와는 매우 다르다. 급식과 위생 상태가 엉망인 데다가 교사는 늘 아이들을(특히 가난한 하류층 아이들을) 모욕하고 벌을 주는 학교였다. 머리카락 잡아당기기, 정강이 걷어차기에다가 라탄 회초리, 채찍 등 체벌 도구 또한 다양했고, 상급반 남학생 몇몇은 교사의 허락 하에 하급반 아이들을 때릴 수 있는 면허까지 받았다. 일종의 선도부인 것이다.
이런 학교에 간 8살 에릭이 오줌싸개가 된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린아이가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저런 학교에서 오줌싸개가 당해야 했던 치욕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다. 굳이 복기하기 괴로우니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70년대 우리나라 대도시 과밀학급에서 가난한 아이들이 당했던 치욕과 유사하다.
작가와 척지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중에 글로 복수를 당한다는 것이다. 에릭이 다닌 학교의 교장 부부인 샘보와 플립은 제대로 복수를 당했다. 전 세계에 널리 고발당하고 두고두고 이렇게 욕을 먹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엔드리스 고발을 당하고 있다.
3. 경찰과 군인이 주 직업이었으나 본질적으로 그는 작가였다.
나는 오로지 바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내가 코끼리를 쏘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종종 생각했다. (40쪽)
행군하는 흑인 군대를 보며 모든 백인이(이 문제에서는 자칭 사회주의자도 전혀 다르지 않다) 떠올리는 생각이 하나 있다. ‘언제까지 자들을 속일 수 있을까? 얼마나 지나면 저들이 총구를 반대로 향할까?’ (49쪽)
- 에릭은 제국주의 경찰로 버마에서 약 4년 간 목부 했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였다. 피식민인이었던 버마인들 입장에서는 에릭이 젊은 지배자이자 제국주의 경찰이었던 다른 경찰과 별로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릭은 평범하지 않았다. 에릭이 버마인들을 보는 시각과 영국 제국주의를 보는 시각은 평범한 지배자의 시각이 아니었다. 그의 내면은 언제나 작가였던 것이다.
4.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원칙
1. 글에서 자주 본 은유, 직유, 기타 비유적 표현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 짧은 단어로 충분할 때는 긴 단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3. 어떤 단어를 뺄 수 있을 때는 항상 뺀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을 때는 수동태를 절대 쓰지 않는다.
5. 같은 뜻의 일상 영어가 생각나면 외래어 문구, 과학 용어, 전문 용어를 절대 쓰지 않는다.
6. 아주 상스러운 말을 하느니 차라리 위의 원칙을 지킨다.
(187쪽)
- 빌 브라이슨이 위 원칙을 꽤 잘 지키는 것 같다. 특히, 1, 2, 5번. 6번은 반대로 지키고 있다. 6번을 ‘상스러운 말을 적재적소에 반드시 배치하여 웃음을 유발한다’로 해석한 것 같다. 이런 빌 브라이슨도 에릭 못지않게 멋진 작가이다.
조지 오웰은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8세에 기숙학교인 세인트 시프리언스에 입학하여 6년을 다닌 후 14세에 영국 최고의 퍼블릭 학교인 이튼 스쿨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였다. 18세까지 4년간 이튼 스쿨에서 수학했으나 대학 진학은 하지 못했고 경찰 시험을 본 후 19세부터 제국주의 경찰이 된다. 이후 25세까지 버마 등지에서 경찰로 복무한다. 25세에 사표를 쓰고 나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허름한 호텔에 작은 방을 얻어 무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때 쓴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30세가 돼서야 출간이 되는데 그 필명으로 ‘조지 오웰’을 처음 사용하여 이후 이 필명을 계속 사용하게 된다. 이후 스페인 전쟁에 마르크스주의 통일 노동자당 소속 의용군으로 스페인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아라곤 전투에서 치명적인 총상을 입기도 했다. 2차 대전에도 지원하였으나 폐가 나빠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후 지병인 폐 질환과 총상 후유증에 시달리며 많은 작품들을 써낸다. 신문에 고정 칼럼을 연재하고 41세에는 <동물 농장>을 발표, 46세에는 <1984>를 발표했다. 폐렴이 점차 악화되어 47세에 사망하게 된다.
나는 아직 <동물 농장>도 <1984>도 읽지 않았다.
어린 시절 아동용 요약본을 읽었을 것이고, 여러 매체나 글에 인용된 일부분을 읽었겠지만 소설 전체를 제대로 읽지는 않았다. 읽지 않은 별다른 이유는 없다. 어쩌다 보니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거나 하도 여기저기에서 들어본 터라 호기심이 반감돼버린 탓일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이 산문선을 먼저 읽게 되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이 산문선의 첫 문장이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아마도 대여섯 살 때부터 내가 자라서 작가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였기 때문이다. 정녕 호기심을 확 끄는 첫 문장 아닌가? 대여섯 살부터 자신의 할 일을 알게 된 사람이라니! 그것도 작가가 될 것임을. 보통의 아이들은 작가라는 것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를 것일 터인데 말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조지 오웰이지만 도대체 이 어린 나이에 자신이 작가가 될 것임을 알게 된 사람의 실체는 어떤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생각이 직접 서술된 이 산문들에 그 내면이 잘 드러나 있을 것 같았다. 책을 잘 사지 않지만 이 책은 주저 없이 샀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조지 오웰을 제대로 읽는 데에는 이 산문선을 먼저 읽은 것이 차라리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성장 과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 생각의 흐름 등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그의 소설들을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정확하다는 표현을 굳이 쓴 이유는 이 책에서 조지 오웰 자신이 자기 생각을 실로 명징하고도 정확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투명하고도 간결한 사람이다. 오웰의 이런 점이 내 마음을 또 끌어당겼다. 다시금 느끼는 바인데, 나는 굳이 돌려 말하거나 은근슬쩍 감추거나 숨바꼭질하듯 말하는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쓰인 글을 읽는 일은 매우 피곤한 작업이다.
오웰이 어느 나이 어느 시기에 어떤 작품을 썼는지, 대표작인 <동물 농장>과 <1984>를 쓸 때 어떤 상황과 생각들에 처해 있었는지 알고 나서 그 작품들을 읽는 것은 나처럼 작가를 꿈꾸는 사람에겐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이 리뷰는 당분간 미완성이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목사의 딸>,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루냐 찬가>, <고래 뱃속에서>, <사자와 유니콘>, 그리고 <동물 농장>과 <1984>까지 읽고 리뷰를 계속 덧붙일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에 대한 종합적인 리뷰를 완성해보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우는 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