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 <나를 부르는 숲>, <발칙한 미국 횡단기>, <더 바디>

by 연잎

빌 브라이슨 <나를 부르는 숲>, <발칙한 미국 횡단기>, <더 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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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발기(記)의 끝판왕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여행 초반부의 모든 것을 끝장나게 잘 표현한다는 뜻이다.

여행을 결심할 때의 비장함, 짐을 싸고 준비할 때의 분주함, 집을 나서는 순간의 설렘, 여행지에 도착한 첫날의 두근거림,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한 기대감 등을 그처럼 잘 표현한 여행기도 없을 것이다. 그의 손을 빌리면 집 앞 마트까지 가는 과정도 한 편의 흥미진진한 출발기가 될 것 같다.



2. 다시 빌 브라이슨


몇 년 전 그의 [발칙한 유럽 여행기]와 제목이 기억 안 나는 여행기 한두 권 더 읽으면서, 만화도 아닌데 이럴 수 있나 할 정도로 깔깔거렸던 경험이 있다. 이후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지인이 쓴 [나를 부르는 숲] 리뷰를 보고, 아, 맞다! 그가 있었지!!! 라며 무릎을 쳤다.

더위가 슬슬 짙어가는 7월, 그의 유머에 한 번 더 빠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손으로 그려본 애팔래치아 트래킹 경로

그래서 바로 <나를 부르는 숲>을 찾아 읽었다. 과연 명불허전. 빌은 빌!

곳곳에 낄낄, 깔깔, 키득키득, 하하하,... 다양한 버전의 웃음을 배치해 놓았다.

미국 뉴잉글랜드 북쪽 뉴햄프셔주에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마을 끝에서 숲으로 사라지는 길을 발견한다. 그 길이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한 구간임을 일게 되어 빌은 전 구간 트래킹에 도전하기로 한다. 원대한 포부를 안고 중무장에 가까운 장비를 갖추고 시작한 트래킹이지만 빌 답게 애팔래치아 트래킹을 완주하지는 못했다. 수많은 우여와 곡절 끝에 첫 트래킹은 1/10도 걷지 못한 채 작파하고 귀가한다.

그 와중에 벌어지는 빌 자신의 슬랩스틱 코미디와 악마에게 빌려온 듯 대상의 치부를 후벼 파는 가차 없는 묘사와 더불어 센트레일리아 광산 마을 화재 사건의 전말 등 지역의 역사와 사건사고에 대한 넓고 깊은 이해가 소개되어 마치 푸짐한 잔칫상 느낌의 책이다. 애팔래치아 숲과 나무와 자연에 애한 섬세한 묘사와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다.


그녀의 이름은 매리 엘런, 플로리다 주에서 왔고 카츠가 공포에 질린 어조로, 순간적으로 지어낸 '한 편의 걸작'이라는 별명이 영원히 따라붙었다.
소파에 누워있던 개가 내려와 다른 방으로 피신할 만큼 격렬하고 강력하게 코를 풀어 귓속의 유스타키오관을 정리할 때 - 자주 그렇게 했다 - 외에는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84쪽)
어떤 여자는 어린애 손가락에 꿀을 묻히고 곰에게 핥아먹도록 하는 장면을 비디오에 담으려다가 이 각본을 이해하지 못한 곰이 그 손가락을 먹어치운 일도 있었다. (141쪽)


그레이록을 소개한 대목에서는 나도 허먼 맬빌과 너새니얼 호돈처럼 그곳에서 몇 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잠시만 이 생각이 든 이유는 책 초반부에서 빌이 제법 공들여 묘사한 곰 이야기들이 퍼뜩 생각나서이다. 과거 정보가 없으니 잘 몰랐고 모르는 만큼 용감했던 사람들이 곰에게 쫓기고 물리고 먹힌 이야기들. 요즘엔 트레일 인근의 곰은 제법 관리가 되고 있다고 하지만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돌이킬 없기에 나는 가지 않기고 했다. 빌 말마따나 애팔래치아 숲 속 어느 곰의 한 끼 식사가 되기 위해 굳이 미국까지 갈 이유는 없지 않은가.


후반부에 갈수록 책이 다 끝나가는 것이 아쉬웠다. 책을 덮고 나니 미련이 남았다.

그의 글을 조금 더 읽어야 2% 부족을 채울 것 같았다.


저서가 워낙 많아서 무엇을 먼저 볼지 잠시 고민이 되었는데, 방금 읽은 <나를 부르는 숲> 덕분에 의외로 빨리 선택할 수 있었다. 그는 미국 아이오와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이 싫어서(혹은 질려서?) 영국으로 가 살다가 다시 미국 뉴잉글랜드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이때 쓴 책이 <나를 부르는 숲>이다. 그에게 미국이 어떤 곳인지 그 속내가 궁금했다. 그리고 나는 미국에 가본 적이 없다.


그래! 그의 미국 여행기를 보자.

빌 브라이슨이 겪고 생각한 미국으로 나의 미국을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발칙한 미국 횡단기>를 선택했다. 아이오와를 기준으로 동부와 서부의 소도시를 중심으로 여행한 기록이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 30대 중반에 쓴 글이지만 유년기와 청년기의 기억이 잘 녹아들어 가 있고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의 미국이 잘 묘사되어 있다.

빌 특유의 세계관이 형성되고 튼튼해지는 과정도 엿볼 수 있었다.



3. 미국 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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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독서 노트에 미국 지도를 그려보았다. 이렇게 지도를 그려보니, 이제 미국이라는 나라가 머릿속 하나의 폴더로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그동안 봤던 많은 영화와 책들의 좌표도 딱 잡히고 배경이 되는 마을의 정서도 조금은 더 깊게 느껴졌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그 적막한 와이오밍 산속 목장도, ‘흐르는 강물처럼’과 ‘가을의 전설’의 몬타나도 내 머리와 마음에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4. 아이오와 주립대가 마약의 메카?


초등학교 6학년 때 알게 된 나의 오랜 소꿉친구 W는 한국에서 대학을 2년까지 다니다가 아이오와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그때 가끔 귀국하는 W를 만나면 늘 “너네는 내가 얼마나 어이없는 깡시골에 살고 있는지 모를 거다. 온 사방에 옥수수밖에 없다.”라고 말했었다. 당시엔 바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후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미국의 그 끝도 없이 막막한 들판과 깊은 산을 느낄 수 있긴 했다. 빌도 사방천지 옥수수밭인 자신의 고향에 넌더리가 났었던 것 같다. 언제나 떠나고 싶었고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는 고향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이 글에서 아이오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감추지 못한다.


W가 다닌 아이오와 주립대학이 마약의 메카인지 처음 알았다. 빌 특유의 과장이 좀 섞인 것일지도 모른다. W에게 물어보니 자긴 금시초문이란다. 자기 대학 다닐 때 가끔 마리화나 정도 하는 애들은 봤어도 마약의 메카인지는 전혀 몰랐다고. 60년대 말 이후 아이오와 대학은 마약의 메카가 되었다고 한다. 히피의 저항정신도 꽤 끝까지 간직했다고 한다. W는 아마 잔뜩 긴장한 동양인 여자 유학생이었기에 그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대학에 다닌다고 같은 세상을 사는 것은 아니니라.


W와 빌 덕분에 나는 이이오와에 대해 남다른 친근감을 갖게 되었다. 미국 중부에서 가고 싶은 곳을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아이오와를 고를 것이다. 지금은 어바인에 사는 W에게 다음에 같이 아이오와에 가자고 했더니, 자기는 갈 마음 없다고 한다. 그냥 지나갈 수는 있어도 굳이 머물고 싶지는 않다고, 지긋지긋한 옥수수밭인데 거기까지 굳이 왜 찾아 들어가냐고. 일리가 있다. 나 같아도 겁먹은 어리바리 유학생을 굳이 소환하러 거기까지 가지는 않을 것 같다. 빌과 달리 W에게 아이오와가 고향은 아니니까.



5. <The Body>


빌의 손 끝에 눈과 뇌를 맡기며 이 책을 술술 따라가다 보면 이제 내 몸은 내가 거의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자료와 전문가 인터뷰를 바탕으로 우리 몸에 대해 진짜 많은 것, 마치 거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한 책이다. 학술서에 가깝지만 역시나 빌답 게 유머를 잃지 않고 있다. 여행기만큼은 아니지만 약간의 발상 전환으로 깔끔한 웃음을 자아내는 포인트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은 머리가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머리가 잘렸을 때 정확히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18세기 말에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런 궁금증을 가질 만한 시대였다. 프랑스혁명으로 인해서 이런 호기심을 품은 이들이 살펴볼 수 있는 막 잘린 머리가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진정한 웃음은 우리가 꾸며낼 수 없는 표정이다..... 진정한 웃음은 지속 시간이 2/3초 - 4초로 아주 짧다. 그것이 바로 계속 웃음을 짓고 있으면 위협적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하임리히가 말라리아 요법이라는 것을 들고 나와서 암, 에이즈, 라임병 치료에 탁월하다는 궤변을 펼치는 바람에 스스로 평판을 너무 깎아버린 관계로, 2006년부터 기도 이물질 제거 처치법을 ‘하임리히 요법’이라는 말 대신 ‘복부 밀어내기’라는 용어로 변경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바뀐 것이니 이제부터는 복부 밀어내기라는 용어에 익숙해져야겠다. 하임리히는 잊어버리자!


폐경이 난자가 바닥이 나서 촉발된다는 것도 신화라고, 폐경이 되어도 여성은 여전히 난자를 보유한다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무엇이 폐경을 유발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따르게 되면 폐경 연령이 점점 빨라지는 이유도 해석되지 않는다. 저출산과 짧은 수유 기간으로 보유한 난자가 빨리 바닥이 나서가 아니라면 왜 우리 세대는 어머니 세대보다 폐경이 빠른 것인지 해석이 안 된다. 역시나... 여자의 몸은 신비로울 따름인 것인가?



6. 궁금했던 빌의 어린 시절


누구나 그의 글을 읽으면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어떻게 자라면 글을 이렇게 재미있게 쓰지?”


이에 대한 답은 <발칙한 미국 횡단기>에 꽤 상세히 나와 있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빌의 부친은 꽤 저명한 스포츠 칼럼니스트였다. 헝그리 정신이 몸에 밴 자수성가형 아버지였는데, 아들에게 글 쓰는 재능만큼은 제대로 물려준 것 같다. 빌에 표현에 따르면


아버지는 대공황의 아들이었고, 돈이 나갈 것 같으면 방금 멀리서 사냥개 소리를 들은 탈옥수 같은 표정을 지었다.
휴가 방문지를 선택하는 아버지의 기준은 두 가지였다. 교육적인가? 공짜인가?


어머니는 무척 온화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짧은 한 마디 말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어머니는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정리하면, 빌은 강력한 글쓰기 재능 유전자를 고스란히 심어준 데다 자식 교육에도 초집중하고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아버지와 아들을 둘이나 키우면서도 화를 내는 법이 없는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의 어머니 밑에서, 휴가 때마다 온 가족이 차를 타고 동쪽으로, 서쪽으로, 남쪽으로 여행을 다니며 성장한 것이다.


부럽다.

처음으로 미국인이 부러워졌다. 이런 미국인이 빌 말고도 많겠지.

지금 잘 나가는 문화예술계 인물들 대부분 이럴 것이다.

에이! 운 좋은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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