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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홍 Jan 05. 2020

그렇게 부부가 되어간다

세상 속에서 세상이 모르는 부부로 살아가는 일상


아주 어린 시절 나는 비혼으로 살 것을 부모에게 선언했다. 내친김에 명절에 친척들 앞에서도.

"나는 나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거야. 그러니까 시집갈 때 다 됐다는 그런 말 하지 마."

물론 집안 어른들 누구도 진지하게 들어주진 않았다. 네 나이에 시집가고 싶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얘.

호호, 깔깔, 허허허. 웃는 소리 속에서 어린 나는 부아가 치밀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른이 진지하게 말을 들어주는 상대는 어른 밖에 없다. 그 당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중에도 그렇게 웃나 두고 보자고.

(정말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지금, 사실상 집안 어른들은 더 이상 웃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30대, 어른들 시선으론 시집을 가서 아이를 한 명쯤은 키워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내가 어린 시절 의지를 철회할 마음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리라.

"결혼 안 한다고 했잖아. 아주 오래전부터 얘기했던 것 같은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좀 하지 마. 결혼을 왜 안 해? 남들 다 하는 걸. 너 무슨 문제 있어?"

급기야 엄마가 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본인 나이 스물넷에 장녀인 나를 낳고 아이 키우는 것 외에 다른 삶이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아온 나의 엄마가.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냥 웃어주는 것 밖엔 방법이 없지 않을까.

우는 것보단 웃는 것이 덜 서글프니까.


너 무슨 문제 있어?


엄마의 질문에 직접 답변하지는 못 할 '문제'가 내게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이미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결혼식을. 

부모도 친지도 직장동료도 없고 순수하게 축하를 해줄 하객만을 모신 모신 결혼식이었다.

웨딩드레스도 입고 부케도 들고 야외 정원에 만든 꽃길도 걸어 서로에게 혼인서약서도 읽고, 눈물도 한 바가지 이상 쏟고 반지도 교환한 후 하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우리가 부부가 되었다고 인사드린.

우리가 부부라는 사실을 그 결혼식의 하객이나 일부 친구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말할 수 없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친구는 사실 내 와이프야, 엄마, 아버지, 고모, 이모.

부장님, 저는 혼인신고만 못 했고요, 기혼자 맞거든요. 시집 안 가느냐고 그만 좀 물어보세요.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 속에서는 밝히지 않고 일부 사람들만 아는 결혼식을 올리고 3년 차, 나의 삶은 배우자가 있는 나와 없는 내가 양분된 채 흘러왔다.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자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결정한 삶 이건만 가끔은 나도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아직 결혼 생각은 없어요, 일과 돈이 최고죠."라고 말하는 나와 "내 와이프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다."라고 글을 쓰는 나 사이에서.


혼란의 끝에서 나는 모든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일 뿐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오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기 위안도 한다.

한 줌짜리 자기 위로다.


지금 나는 얼마 전 이사 와서 아직 낯선 아파트의 부엌에서 얼마 전 배달 온 나무 식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나의 아내는 도롱 도롱 잠든 숨소리를 내며 거실 소파에 누워있다. 본인은 심심하지 않으니 편안하게 글을 쓰라고 하고 소파에 눕더니 벌써 잠이 든 모양이다.

아내는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생기는 침묵과 간격을 힘겨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라 우리의 부부생활은 대부분 평온하게 흐르고 있다.

평온한 부부생활,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사치가 아닌가 싶은 마음으로 잠든 아내를 잠시 바라보았다.


 




사실 내가 어린 시절 비혼 선언을 했던 것은 세상에 무수한 사람 중 한 사람과 평생을 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런 사람을 선택할 자신이 없었다. 이 사람이라고 선택했는데,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땐 어쩌면 좋지, 그런 생각을 (우습게도) 진지하게 하는 어린애였다.


그렇게 욕심이 태평양이던 내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른이 된 나는 결혼식에서 이 사람이면 내 평생을 함께해도 이 세상 뜰 때 아쉬울 것 같지 않다고 느끼며 반지를 끼워주었다. 손을 잡고 날리는 꽃잎 사이로 걸어 나왔다.

그렇게 부부로서 걸어 나와 아직도 부부가 되어간다. 부부로 살고 있다는 마음 하나로.

남들이 잘 깔아놓은 아스팔트 6차선 도로가 아닌 진흙탕 흙길을 웨딩드레스 자락이 죄다 흙투성이가 되도록 걷는대도 상관없다. 걷다 보면 호수가 나올 수 있고, 사막도 나올 수 있겠다.

그래도 내 아내와 걷다 보면 그럭저럭 걸을만하겠구나 싶다. 부부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길 끝 마지막 순간 당신과 부부로 살았던 것이 참 행복했다고 웃을 자신이 있다. 

누구나 평등하게 겪게 되는 길의 끝에서 웃을 자신이 생기다니 이만큼 만족스러운 선택이 더 있을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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