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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홍 Mar 01. 2020

결혼 이후 혼자 또는 둘의 삶

부부 역시 인간관계의 한 카테고리인데


"우리 결혼합시다."

"좋아요."

하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그동안 고군분투한 두 주인공의 피날레를 위해 더 호화롭고 아름답게 3단으로 만든 웨딩케이크와 축복하는 조연들. 그동안 괴롭히던 악역들의 최후가 끝나고 주인공들은 결혼식장에서 한 장의 그림 같은 모습으로 키스한다.

폭죽이 터지고 꽃잎이 흩날리며 화면에 자막이 뜬다.

- The End -


아, 끝났구나.

뒷맛 깔끔하다. 일상으로 돌아가며 조금의 찝찝함도 남기지 않고 머릿속에서 싹 잊히는 영화, 드라마들은 이렇게 주인공들의 키스나 결혼식으로 마무리 장면을 택하는 것 같았다. 타성에 젖다 보니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결혼식 장면으로 안 끝나면 이상하게 좀 허전한 것도 같았다.


이렇게 각종 매체에서 행복한 결말은 곧 결혼식이라고 보여주는 와중에 퍼뜩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그 이후의 삶은 어떨까?

The End가 뜬 이후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 둘은 죽음이 손짓하는 순간까지 영화 속 장면만큼 간절하게 사랑하며 살아갈까. 아니면 역시 장애물이 있어서 서로를 향해 너무 빨리 타올랐던 것은 아닐지 의심하게 되는 건 아닐까.

백설공주는 자신의 시체에 입 맞춘 왕자를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사랑했을까.

모든 이야기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고 끝을 맺는데, 현실은 그 이후에도 삶이 계속 연결되잖아.


에쿠니 가오리가 쓴 결혼 에세이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에서는 읽은 한 장면이 떠오른다.

결혼 후 남편을 보고 '이 사람은 왜 양말을 제자리에 두지 못하는 걸까.' '이 사람은 왜 서랍을 제대로 닫지 않는 걸까.'(대충 이런 의문이었던 것 같다) 의문을 갖는 장면이다. 그리고 결혼한 상대를 사실은 잘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깨닫는 장면이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혼생활은 이렇게 계속 상대에 대해 잘 몰랐던 것들을 과격하게 코 앞에 들이미는 과정같다.

그런데 어떻게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책의 한 구절을 모두 믿어버리는 걸까. 타인과 한 공간에서 살면서 심지어 딸꾹질처럼 상대의 몰랐던 면이 터져 나오는 불안정한 환경인데.


나는 애인이었던 시기의 아내도 지금만큼 마음 깊이 사랑했다. 

떨어지면 아쉬워서 내 집에서 오래 머물러주길 바라고, 집으로 돌아간 애인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허전해서 얼른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란 날도 있었다. 심지어 함께 살며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동거가 먼저 시작되었고 함께 살다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니 결혼 후 삶이 한 집안에서 불편한 인간관계를 요구하는 환경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사실 그렇지는 않다. 

나는 꽤 만족스럽게 부부라는 인간관계를 받아들이고 일궈나가는 중이다. 물론 타인의 부부생활에도 어떠한 간섭도 조언도 할 마음은 없다. 모두 각자의 삶이고 각자의 과제인 만큼 제각각 가장 좋은 방향으로 살아가리라 생각한다. 너무 속 편한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로 오지랖 넓은 성격은 못 되니까.


결혼에 꽤 만족하고 있지만서도 사회생활 속에서 너무 가볍게 "슬슬 결혼할 때 안됐어?"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로 의아하다. 또는 "결혼할 사람 없어?"같은 질문들에도.

흔한 질문이지만 조금 뜯어보면 굉장히 이상한 질문이다.

결혼을 할 나이를 타인이 정해서 권장하는 것은 정말로 이상한 것이다. 그걸 대체 어떻게 어떤 나이로 특정할 수 있는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대놓고 "당신이 틀렸네요."라고 말할 만큼 에너제틱한 사람이 못 되어서 그저 웃어넘기는 편이지만 내심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사람은 부부생활이 인간관계라는 걸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구나. 한 집에 두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이 어느 일정 나이가 되면 저절로 가능하다고 믿을 만큼 자신과 한 집에 사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구나.'

좀 시니컬한가요.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은 어쩔 수 없군요.

물론 여기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사니까 알아서 해결될텐데 뭐가 걱정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더 멀리 두고싶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사랑하니까' 괜찮다고 둥글게 뭉쳐 비벼서 꿀꺽 삼키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사실 나는 결혼 이후에도 이 집안에는 '혼자' 또는 '둘'의 시간이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혼자 책을 읽을 때 아내가 나를 책에 푹 빠지도록 그냥 두는 것은 결국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둘의 시간이 흐르는 순간도 있다. 함께 주말 저녁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거나 밥을 먹으며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화를 나누거나 그런 시간.


그런 시간들은 보통 무리 없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내와 나는 서로 타인이기에 가끔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시간이 충돌하는 경우가 생긴다.

혼자의 시간을 원하는데 상대가 둘의 시간을 원하고, 둘의 시간을 원하는데 상대가 혼자의 시간을 원하는 그런 경우들이 사실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아내가 아니고, 아내가 내가 아니니 당연하다.


나는 사실 굉장히 혼자의 시간과 혼자의 공간에 민감하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아내와의 결혼생활이 그다지 고난스럽지 않은 이유는 내가 아내를 정말로 많이 사랑하기 때문만은 아니고 우리가 공동생활 중 서로에게 일부는 양보하고 일부는 포기해야 하며 일부는 협상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타인과의 공동생활에 대한 이해가 어떤 일정한 나이에 갑자기 퍼뜩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사랑하니까 결혼식을 끝내면 저 사람과 나 사이에 어떤 포기와 어떤 희생과 어떤 감수가 있어야 한다는 걸 파박 계시를 받듯 알게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려한 예식 이후에도 둘만의 공동생활 속 인간관계가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사회 속 그 어떤 인간 관계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까지 안다면 나이는 상관없지 않을까. 

물론, 사랑하기 때문에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도.



어느 부부나 굉장히 많은 문제를 긴 시간 속에서 여러 과정을 통해 풀어나가겠지.


아내가 가끔 했던 "두 사람 사이에 절충이 어딨어, 어느 한쪽이 포기하는 거지."라는 말처럼 그냥 서로 이러저러하게 포기하고 서로 조금씩 포기하고 그러려니 살아가면 또 혼자의 시간, 둘의 시간이 뒤섞이며 우리 부부의 관계가 완성되어가는 지점이 보이겠지 기대해본다.


또 너무 나이브한 결론인가.

하긴, 결론이 어딨어, 삶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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