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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홍 Mar 09. 2020

아내에게 승리의 영광을 나눠주려면

여성 가장으로 살며 마주치는 고민들

가장이란 무엇일까. 

돈을 벌어오는 사람, 집안을 책임지는 사람?

나는 가끔 그 단어를 곱씹어 볼 때가 있다. 단어 자체는 별로 어렵지가 않다.

팀장, 파트장, 실장.. 각종 '장'들처럼 가족의 '장'이라는 것 아닌가. 단어만 뜯어서 보면 그런 뜻인데 그게 또 그렇게 쉽게 파악할 단어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은 당장 가계의 생계를 꾸리기 위한 기본적인 재화를 벌어다가 모이처럼 가족들에게 떨궈주는 역할이라고 느꼈다. 내가 살면서 마주치는 무수한 사람들이 누군가를 가장이라고 지칭할 때 보통 그런 의미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동물로 치면 먹이를 물어다가 무리에게 공급하는 그런 책임을 가진 존재들.


그렇지만 그 또한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삶은 도무지 내가 단순하게 살아가도록 그냥 두질 않는다. 예를 들자면 내게 주부 역할을 맡아주는 아내가 있고 대다수는 모르는 결혼식을 올린 여성으로서 현재는 가장 역할을 수행 중이라는 것부터 단순하기는 이미 그른 것이다.


사실 내가 나를 가장으로 느끼지만 사회에서 마주치는 대다수의 타인들은 나를 가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렇게 대단히 복잡스럽고 비극적인 일은 아니다. 더하여 나를 비혼 여성 취급하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내가 준 정보가 워낙 제한적이라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을 전제하여 나에 대해 제멋대로 판단했다고 그들을 비난할 생각까진 해본 적 없다.


다만 복잡한 것은 의외로 일터에서 발생한다.


"애 아빠 됐잖아, 가장인데 열심히 해야지."

"야, 네가 애가 있냐 뭐가 있냐. 혼자 번 돈 다 쓰는데 여기서 네가 제일 부자일걸?"


이런 말은 빈번하고 흔하게 들을 수 있지 않던가. 그것도 직장에서 가벼운 스몰토크로.

또는 저런 뉘앙스의 말이 다수가 있는 자리에선 한 번쯤 툭 튀어나오기 쉽지 않던가.


그게 뭐, 대단히 잘못된 말도 아니지 않아?

아이가 생겼으니 열심히 하라는데 뭐.

비혼 여성이니까 용돈 받는 애 아빠보단 쓰는 돈이 많을 거란 농인데 뭐.

(네네, 이해합니다. 비난하는 것이 아니니, 진정하셔요.)


문제는 저런 말이 의식을 만들고 의식이 실제 결과로 완성되어 버리는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공정하게 고치고 또 고쳐도 말이 많은 인사고과에서 그렇고 승진, 리더를 결정하는 의사결정에서 무심결에 의식이 흘러버리는 것.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애 아빠는 가장이니까.

우리 가난하던 그 시절, 아버지들, 가장들이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처자식 생긴다는 것이 다 그렇게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책임인데 같은 성적이면 그래도 저 놈이 가장이니 승진시켜주면 더 치열하게 일하겠지. 또는, 가장이니까, 팀장 달 때도 됐지.

가장인데 연봉 좀 올라야 애 학원비도 더 쓰고 그럴 것 아닌가.


그런 모든 의식의 흐름 중 나의 위치는 어디쯤 자리 잡고 있을까.

여성이니 일을 못 하거나 대충 하려고 한다거나 정수기 물통도 안 든다거나(아이고), 그런 걸 떠나서 의사결정권자의 머릿속에 공식적으로 비혼 여성일 나의 위치가 공식적으로 처자식 딸린 가장일 저 남성 동료보다 앞지르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완벽해야만 하는 걸까. 

의사결정권자가 공감하는 남성 동료의 일생과 그저 막연히 저 정도 월급으로 혼자 살면 편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할 나의 일생 중 어느 쪽 손을 들어주기 쉬울까.


그래서 나의 삶은 더욱 복잡스럽다.

저도 처가 있는데요, 자식은 아직 없지만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리는 더더욱 없다. 그야말로 평가권자의 머릿속에서 아예 이해를 못할 범주가 되어버려 어떠한 평가조차 내리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차라리 비혼 여성인 쪽을 택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마음을 먹은 지 오래되었다.


그렇지만 나도 나의 처에게 승리만 쟁취하는 가장으로 보여지고 싶다.

야생에서 먹잇감을 물어오는 것이 가장들의 싸움이라면 가장 맛있는 먹이만 물고 오는 가장이고 싶다.

나와 함께 삶을 공유하는 아내에게 영광만 나눠주고 승리만 안겨주며 삶이 온통 꽃길이라고 느끼게 만들어주고 싶다.

그것은 가장으로서 나의 욕구이자 본능이다. 어릴 적부터 바라고 원했던 나의 역할이자 나의 욕망.


여러 갈래로 생각해 봐도 다른 방법은 없다.

나보다 좋은 먹이를 낚아챈 경쟁자의 목덜미를 물고 어떻게든 매달려 이겨서 쟁취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를 경쟁의 대상으로도 봐주지 않더라도 계속 달려들어 이길 수 있다고 외치는 것 밖엔 없다.


무해해 보이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유해해 보여서 경쟁자들이 달려들어 숨통을 죄어도 결국은 버티고 싸워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나는 가장이니까. 이기는 모습만 보이고 싶은 어느 가장과 똑같은 가장이니까.


"이 영광을 제 아내에게 돌립니다."

이 말을 하는 날이 온다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좋겠다. 그렇게 만들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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