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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홍 Mar 16. 2020

우리 집에 수건의 요정이 산다

그럴 리가 있겠나요, 누군가의 노동이지요.

출근을 앞두고 샤워를 하다가 문득 얼마 전엔 물이 좀 느리게 빠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던 날이 있었다. 세면대도 유독 반짝거렸고 샤워를 마치고 수건장을 열어보니 수건이 가득했다.

샤워한 물이 막히지 않고 술술 흘러나가는 것을 느낀 그 날은 가득 차있는 수건조차 갑자기 묘하게 다가왔다.


'한 번이라도 아침에 샤워하고 수건이 없던 날이 있었던가?'





나는 외벌이 중인 여성이고 아내와 한 집에 살고 있다. 

(꾸준하게 매 편마다 쓰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문장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벌이로 우리 부부와 고양이 두 마리가 함께 살 집을 얻고 호화롭지 않은 생계를 꾸리기가 영 불가능하지는 않아 아직은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자산의 공유가 보장되는 법적 부부는 아직 되지 못해서 그 부분에서 위험은 남아있지만 그래도 3년 차 부부로서 실수와 만회를 반복하며 가계도 조금씩 안정되고 있어 진중한 마음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내가 가진 그 날의 의문은 무척 선명하게 남아있다.

수건이 없던 날이 있었던가.

그리고 출근길에 조금 더 확정된 의문점들을 떠올렸다.

휴지가 떨어진 채로 없던 날이 있었나.

먼지가 자욱하거나 냉장고에 음식이 썩어 가득한 날이 있었나.

싱크대에 설거지가 필요한 접시가 가득 쌓여 쓸 식기를 찾을 수 없던 날이 있었나.


답은 전부 '아니오'였다.


그것들은 거의 요정이 부린 마법처럼 매번 내가 필요한 순간 손만 뻗으면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심지어 빈자리가 다시 찼음에도 모르고 넘어간 적도 많았을 것이다. 그냥 나는 익숙하게 무언가를 사용했고, 소비되어 빈자리가 생기면 요정의 힘처럼 새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뿅하고 생기는 것처럼.


그렇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요정 따위가 아니라 그것은 순수하게 인간의 노동을 전제로 한 결과였다.

다른 인간도 아닌 내 아내가 묵묵하게 별 말없이 해놓은 노동이었을 것이다.


아내의 의도는 사랑하는 사람인 내가 불편하지 않게 출근길을 나서길 바라고, 집에 있는 동안은 다른 생각 없이 편하게 쉬길 바란 것이었겠지. 나도 아내가 늘 세상 속에서 원하는 것을 다 갖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니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마냥 다정하다 여기면 그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섬뜩했던 것은 그 노동이 얼마나 눈에 보이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가끔 나의 아내는 "나는 몸 편한 백수니까."라거나 "여보는 혼자 회사 다니느라 힘들지."라고 말을 한다. 그 모든 말속에서 우리 집을 위해 세심하게 살피는 그 모든 가사노동은 지워져 있다. 거의 무보수에 가까운 노동임에도.


아내가 그 일이 별로 어렵지 않다고 말하거나, 외벌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하고 느끼는 것과 무방한 나만의 감상이었다. 어떤 노동이든 어렵건 어렵지 않건, 누가 그 일을 어떻게 얼마만큼 했는지 티가 나는 법인데 가사노동은 놀라울 만큼 생색내기가 어려운 종류였구나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육아를 하지 않으니까, 돈을 벌지 않으니까, 집안일이 뭐 힘들다고.

그런 아내의 말에 대해 나는 그게 맞다고, 당연하다고 생각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벌어오는 돈 중 꽤 많은 비중의 돈을 남에게 줘도 아내가 해내는 것의 반도 해내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을 전제로 챙겨주는 것이라도 그것을 다정함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나하나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내에게 무엇을 해주는가를 배제하고 아내가 나를 위해 살펴주는 이 집안의 모든 일들이 그 어떤 것도 저절로 되거나 마법의 힘으로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새겨야 한다.


나는 돈을 벌고 아내는 집안일을 한다.

그렇게 단순한 문장으로 일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조금만 손을 놓으면 와르르 무너질 일상을 집안을 둘러보며 상상해보았다. 일주일, 아니 3일은 갈까. 나 혼자 돈 벌고 생활을 꾸리면 지금만큼 윤택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자주 감사하고 살피고 내가 함께 동참해야 균형이 맞을 부분을 묻고 대화하며 부부의 삶을 공평하고 둘 다 행복한 구조로 만들고 싶다고 자주 생각한다. 물론 아내가 만족할 만큼 집안일을 해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자꾸 생각하지 않으면 타성에 젖어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아마 내일도 모레도 욕실의 수건들은 내가 필요할 때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요정의 소행이 아니다.

전부 아내가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살피고 내 불편을 염려하며 몸을 실제로 움직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세심하게 집안을 살피는 아내를 세심하게 내가 살펴 감사할 일을 찾아내고 정말 새삼스럽다고 생각하는 부분까지 고마워하고 싶다. 아직 미약한 가장이라 고마워하는 것 외에 또 뭘 더 줄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일 좋아하는 건 내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일 테니 더 힘내서 열심히 일을 하겠습니다, 아내여.

(아마 마지막 문장을 제일 좋아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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