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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홍 May 25. 2020

도대체 언제까지 추울 작정인지

도저히 이해를 못할 만큼 추운 집에 대한 넋두리


"너무 추워, 세상에.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나의 투덜거림에 아내가 답했다.

"그렇게 말해도 보일러는 안 돼. 안됩니다."


단호하기도 하지.


엄살도 아니고 그냥 하는 말도 아니다. 실제로 우리 집은 최근까지도 아침이나 늦은 밤에 너무나 춥다. 침대에서 내려와 발을 딛자마자 몸이 이불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할 만큼 춥다. 햇빛이 들면 나아지지만 해가 지면 또 서늘하다가 서재 같은 경우는 금방 차갑게 식어버린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책상 아래에는 전기난로를 틀어두었다. 

무려 5월 말에! 

심지어 며칠 후면 6월이고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여름의 시작이 아니던가.


나에겐 추위와 겨울을 증오한 무구한 역사가 있다.

눈 오는 건 싫어, 추운 건 싫어, 겨울이 싫어!

그렇게 외치던 어린 나에게 내 아버지는 "네가 싫어하는 것이 하필 한 계절이라니 슬프구나. 일 년 중 반드시 불행한 시기가 있을 수밖에 없단 얘기잖니. 조금 좋아하도록 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지만 30년이 훌쩍 지나가도록 추위에 대한 나의 공포에 가까운 증오는 조금도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몸이 약해지면서 더욱더 심하게 겨울을 싫어하게 되었다. 겨울만 재택근무를 할 순 없을까 궁리할 지경이었는데 정말로 그런 근무조건을 내세운 회사가 있다면 진지하게 이직도 고려할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겨울과 추위가 싫은지 모르겠지만 어떤 이는 더운 것이 너무너무 싫다고 말하곤 하니 각자의 체질이 아닐까 생각할 뿐이다. 나는 약간 서늘한 바람이 스치는 감촉조차 싫어하는 사람이니 조금 중증이긴 하지만.


낭만에 대한 글을 쓸 기회가 있었을 때 한번 쓴 적이 있는데 나는 낭만을 이유로 추운 데서 오랫동안 걸어야 하는 행위를 정말로 괴로워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눈 내리는 거리를 이어폰을 나눠 끼고 오랫동안 걷거나 겨울 바닷가를 오래 걷거나 눈 덮인 숲 속 오솔길을 걷거나 그런 것들은 생각만 해도 벌써 숨이 가빠온다. 정말로 싫다. 

나의 낭만은 벽난로 근처 안락의자에서 두꺼운 담요를 덮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담은 머그잔을 쥐어야 겨우 찾아올 것만 같다. (물론 벽난로 근처 안락의자에 앉아본 적은 없다.)


잠깐 이야기가 딴 길로 빠졌는데 중요한 것은 작년 겨울에 이사 온 우리 부부의 집에 벌어진 특이사항이다. 

왜 추운가. 정확하게는 왜 지금 이 시점에도 추운가 하는 불평이다.


이 집을 처음 부동산 중개업자와 함께 보러 왔을 때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집 바로 옆에 붙어 부엌의 전면 창으로 커다란 그림처럼 떡 하니 보이던 낮은 언덕 수준의 숲이었다. 겨울이라 앙상한 나무들이 가득했지만 여름이 되어 저 나무에 이파리가 담뿍 돋으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처럼 파란색이 온통 펼쳐질지 안 봐도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 외에도 우리 예산보다 적은 금액에 그동안 봐왔던 놀라울 정도로 낡은 집보다 퀄리티가 좋았던 것도 결정에 한 몫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숲이 자꾸 눈에 들었다. 벌레도 많고 다른 곳보다 온도가 낮은 것은 걸리지만 그래도 나무가 가득한 풍경이 내겐 굉장히 절실했던 모양이다.


나는 자연보단 도시를 선호하는 사람이기는 하다.

추위를 싫어하고 벌레가 싫어 캠핑도 안 가는 사람인데 자연이 좋을 리가 만무한데도 그때는 서울의 빌라촌에서 아내와 신혼집을 마련한 후 그 척박한 환경에 약간 지쳐있던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좁은 길과 다닥다닥 붙은 주차된 차들 사이에 온통 전선과 낮은 빌라들만 가득한 그곳에서 우리는 많은 추억을 쌓았지만 한편으로 나는 넓은 인도와 잘 만들어진 조경과 가까운 곳에 나무들이 보이는 풍경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결정은 되었고 이 집에 이사 온 첫날부터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혹독한 추위를 집 안에서 느끼고 놀라고야 말았다. 보일러를 올렸는데도 너무 추워 수면양말과 경량 패딩까지 걸치고 전기장판을 켠 침대 안에 들어와서야 그것들을 벗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아침마다 씻는 것이 고역이었다. 화장실이 어떻게 그렇게 추울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거의 울며불며 샤워를 했는데 따뜻한 물을 끄는 순간 추위가 맹수처럼 뒷덜미를 물고 늘어졌다. 물기를 채 닦지도 못하고 옷부터 주워 입을 정도로 추웠다. 정말로 추웠다.


봄이 온다고 새싹이 움트고 산수유 꽃이 피었다가 지고 목련도 피었다가 지고 개나리와 철쭉이 우리 집에서 보이는 낮은 산을 수놓는 동안도 나는 외출할 때 패딩을 벗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리는데도 나는 정말 진지하게 아침 출근할 때 우리 동네가 얼마나 추운지 아느냐고 응수했다. 

너무 오랫동안 추위에 물리고 할퀴어서 내 감각이 잘못된 것인지 아무튼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보일러를 더 세게 틀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첫 달 관리비 고지서를 받아 들고 심장이 멎을 만큼 놀랐던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그랬다.


아니, 사람이 자기 집 안에서 안정이 될 만큼만 따뜻하게 틀었을 뿐인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금액을 떼어간다고요? 그 사실에 무척 분노했지만 이 아파트 카페에 들어가 보니 아주 많은 난방비에 대한 팁들이 넘쳐났다. 보일러를 이렇게 딱 몇 분만 돌아가게 틀어보세요, 이런 곳들을 확인해보세요, 문풍지를 붙이고 창문에 단열이 되는 것을 붙여주고 등등.


그런 것들을 보니 모두가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집 안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추울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타협한 채 살아가고 있어서 새삼 놀라고야 말았다. 나는 내 집인데 춥게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하기가 어려운데. (물론 그만한 난방비를 지불할 능력이 되었다면 분노할 필요도 없었을 테지만...)


그 사투는 아직도 우리 집안의 큰 과제이다.

왜냐하면 이 놀라운 집은 오늘도 춥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시린 발을 자꾸 전기난로에 가까이 가져갔다가 너무 뜨거워서 놀라 떼었다가를 반복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게 체감상 아주 짧게 느껴지는 여름이 순식간에 지나고 나면 지겹도록 긴 겨울이 시작된다. 혹독하고 괴롭고 기관지를 아프게 만들고 콧물을 훌쩍이게 만들고 피부를 건조하게 들뜨게 만드는 겨울이 올 것이다. 그러면 이 방은 아주 찰나의 순간 품었던 열기를 잃고 또 발을 디딜 수도 없을 만큼 차갑게 식어갈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집에서 보는 숲의 풍경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애증과도 같구나.

숲 때문에 여름의 초입에서도 춥다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이 집을 숲 때문에 좋아하게 되다니.


조금 내가 바라보는 삶의 모습과 닮아있어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스러웠다가 증오스러웠다가 그런 것이. 


(굳이 거창하게 마무리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어버려 겸연쩍은 마음이다. 아,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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