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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홍 Jan 20. 2020

오늘은 내 아내가 존재하지 않는 날

명절마다 싱글이 되는 우리 부부의 뻔하고 쓴 거짓말

"명절은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데 왜 매년 유지되는 걸까?"

내 질문에 아내는 웃었다. 모르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의문은 내겐 역사가 깊었다. 

어린 시절엔 왜 매년 소꿉장난 같은 차례상을 차리기 위해 만나선 저렇게 서로를 불쾌해하는 걸까 생각했다. 오랜만에 자손들을 앞에 두고 어깨가 으쓱해서 덕담처럼 잔소리를 늘어놓는 할아버지를 빼놓고는 유쾌하지 않은 모든 어른들 얼굴은 내 의문을 더욱 깊어지게만 만들었다.


아버지는 이런 날이 없으면 가족이라는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고 설교했고, 엄마는 차례를 안 지내고 지나가면 약간 마음이 찜찜해진다고 했다. 그래도 내 새끼들 조상인데 배불리 먹여놓으면 자손들 탈은 안 나게 해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하루 그냥 너끈하게 고생하고 말자는 마음이라고.


사실 내 부모는 명절에 대한 문제를 제외하고 지나칠 정도로 이성적이며, 감정 절제를 기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샤머니즘도 가족 간의 끈끈한 정같은 공익광고 카피스러운 문장과도 거리가 먼 두 분이 명절에 대해서는 감성 충만한 변명을 굴비처럼 엮어내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두 분이 변명처럼 늘어놓은 명절의 필요성에서 한결같이 등장하는 존재가 있었다.

그것은 '가족'이었다.

내 새끼들, 조상, 자손, 가족.

결국 피와 결혼으로 맺어져 계보를 이어나간 사람들끼리 앞으로도 이 위대한 씨족의 번성을 기원하며, 비 내릴 때까지 지내는 기우제마냥 명절을 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족의 필요성을 사람들이 절대 잊지 않도록.

그러지 않으면 가문을 번성시켜야 할 필요를 사람들이 점점 잊어갈지도 모르니까. 


뜬금없이 가족의 정을 운운하는 부모의 모습에 나의 의심이 확신처럼 굳어졌다.


내 부모는 내 배우자도 원하지만, 자신들의 후손이 되어줄 손주를 원하는 모양이다. 내겐 영영 불가능한 일이니 이미 가족의 비극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가족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명절에 내가 만든 가족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자취를 감춰버린다. 나는 결혼은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구는 것에 매우 익숙하여 이미 그에 대해 슬픔이나 비참한 감정에도 무뎌졌다.


"너 올해 추석까지 결혼할 놈 하나 안 데리고 오면 다신 엄마 얼굴 볼 생각은 하지를 말어."

설을 앞두고 전화를 건 엄마의 엄포에 나는 낄낄 웃었다.

"오, 추석 연휴에 길게 여행 다녀올 수 있고 좋은 명목이네."

"야, 엄마 지금 농담 아니야."

"나도 농담 아닌데."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지는데 이젠 마음에 생채기가 안 남는 것인지 하도 많이 긁혀 더 이상 아픔을 느낄 공간조차 남질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결혼식을 무사히 올리고 처음 맞은 명절에도 그랬다.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처음 맞은 명절에 여러 감상을 물고 돌아왔다. 낯선 시댁, 반가운 친정, 눈치 없는 남편이나 아니면 연휴에는 나도 좀 쉬자며 제발 빨리 좀 떠나 달라고 채근하던 시어머니까지. 생판 남인 타인의 가족들과 하루나 이틀을 함께 보낸 것은 그들로서는 가장 큰 미션을 돌파한 것처럼 보였다.


내가 결혼하고 처음 맞이한 명절은 "그래서 일 얘기는 됐고, 시집은 언제 갈 건데."라는 엄마의 말에 평소와 같이 "아, 때 되면 알아서 할 테니까 좀 냅두소."라는 대답을 속눈썹의 떨림 없이 해내는 것이 가장 큰 미션이었다. 


왜냐하면 그 시점 나는 결혼식에서 너무나 사랑스럽던 아내가 자꾸 마음속에 뭉클하게 피어오르는 것에서 벗어나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의 배우자가 된 아내가 있음에도 끊임없이 부모에게 결혼은 아직 생각이 없노라고 부정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비겁해 보였던지.

나의 결혼 후 첫 명절은 시댁도 없고 친정도 없었다. 

그저 평소와 똑같은 대화에 조금 더 아프고 조금 더 눅진하게 지친 나 자신만이 평소와 조금 달랐을 뿐이다.


이번 명절도 내게는 아내가 없다.

세상에 그런 존재는 아예 없었던 것처럼 굴며 그런 스스로의 처지에 쓴웃음만 겨우 짓겠지.


이상한 일이다.

가족이 가장 소중해지고 중요해지는 날이 명절이라고 말하면서 내 가족은 참 쉽게 지워져야 하는 날이 명절이라는 것이. 그것이 그렇게 억울해도 어떻게든 버텨낸 후 지친 몸으로 내 아내의 품에 털썩 안기게 될 거라는 것이. 슬프고 원통해도 그냥 빨리 지나가라고 시간에게 애원하는 내가.


명절에는 사실 무수한 부부들이 여러 가지 갈등과 괴로움을 겪을 것이다.

모든 괴로움은 경중을 가릴 순 없다. 괴로움은 각자 짊어지는 것이니까.


우리 부부는 갈등을 겪을 틈도 없이 연휴가 되면 서로를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낸다. 손을 흔들고 약간 울 것 같은 마음으로 돌아서서 각자의 집에 도착하면 서로가 없는 것처럼 굴 것이다. 일종의 연기처럼 뻔한 말과 표정으로 아내를 지우고, 아내는 나를 지우며.


그리고 명절이 끝나고 우리의 집에 돌아오면 그제야 우리가 아내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명절은 그렇게 우리를 지워가며 부득불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마음에 못을 망치로 쾅쾅 박는다.

하긴, 명절이 되면 유달리 아내가 더 보고 싶다. 

억지로 떨어져 있으니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것이 당연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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