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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홍 Feb 16. 2020

엄마가 원하는 딸은 될 수 없더라

결국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 모녀에 대한 가벼운 감상

"내 기분이 나쁘다고!"

갑자기 걸려온 엄마의 전화였다. 사무실에서 한참 급한 메일 회신을 하며 전화를 받아 대강대강 답하다가 갑자기 터져 나온 엄마의 외침에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헛웃음이 나와 조금 웃었더니 엄마 지금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웃음이 나오느냐고 또 한바탕 잔소리가 길어진다. 맙소사, 메일을 쓰면서 대강 통화하고 종료할 만한 전화는 아닌 것 같다. 

이 메일 정말 급한 건데.


결국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래, 왜 기분이 나쁘신데?"

"내가 왜 다 큰 딸 놔두고 아들한테 그런 얘기를 하고 있어야 되냐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나쁘잖아."

진정성 있는 대화 나누기는 완벽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또 할 말을 잃어버렸으니.


이 기묘한 대화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사정은 이랬다.

먼 곳에 사는 엄마가 우리 남매에게 일용할 양식들을 이것저것 싸서 보냈다. 육류, 해산물, 청국장, 된장 등 저녁식사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식재료였으니 충분히 감사할 일이었다. 전화해서 감사하다, 잘 먹겠다, 표현을 해야지 머릿속에 담고 있었던 터였다.

그 소중한 식료품은 출근을 하는 나보다 현재 합법적 무직 상태인 남동생이 먼저 손에 넣었고 냉동실에 쟁여놓으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감사하다거나 이건 어떻게 먹으면 되는 것인지, 소금에 절인 것인지 아닌 것인지, 이건 그냥 끓이면 되는지 무언가 더 첨가하면 될는지 묻고 싶었겠지.

어린 시절부터 나보다 더 섬세하고 먹는 것부터 제 방 인테리어까지 잘 챙기던 동생이기에 기왕 받은 음식을 더 맛있게 먹고 싶은 욕구였을 테고, 나는 그보다 더 무딘 편이라 그런 질문을 안 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 남매의 오랜 차이점이었고 각자 그 성향에 대한 의문 없이 삶을 일궈나가는 중이었다.


엄마를 기분 나쁘게 한 지점은 (기묘하게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엄마는 오래 키운 만큼 아들의 그런 성향을 알고 있었고 질문에 대답한 후 더 나아가서 이건 이렇게 먹으면 더 맛있고 저건 저렇게 먹으면 더 맛있다고 본인의 주부 노하우를 대방출했던 모양이다. 동생은 그 대화에 더 맞장구를 치거나 질문을 하며 그 '주부 노하우'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받아주었을 것이다.

엄마는 한참 말하다가 갑자기 무언가 굉장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왜 딸을 놔두고 아들한테 이런 소리를 하고 있지?'


나는 그 생각을 단 1%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엄마와 나의 삶은 무수하게 서로를 이해 못하는 지점들이 있으니 굳이 이해하려고 노력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그 노력을 접어두고 반박 정도만 해보기로 했다. 

(그냥 듣기엔 좀 억울했나보다.)


"걔가 먹는 걸 더 좋아하잖아."

"아니 네가 딸인데 엄마한테 이런 얘기 듣고 걔 밥 좀 잘 차려서 먹여주면 어디가 덧나?"

"어, 덧나."

"이게 나이는 먹을 만큼 먹어가지고 어미를 놀리나?"

"엄마, 내 동생은 내가 해주는 밥을 싫어해. 나보다 더 식도락에 밝은 놈이라고. 그런 애한테 내가 딸이니까 밥을 차려주라니? 그건 나도 고역이고 엄마 아들한테도 고역인 상황이야. 그거 알잖아?"

나름 긴 말로 이해시켜보려고 했지만 울컷 솟은 엄마의 불쾌함은 기어코 단절을 뜻하는 그 말을 뱉게 만들었다.


"아유! 시끄러워! 뭘 자꾸 따지고 들어,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데! 좀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해! 딸이 먼저 그렇게 좀 해주면 안 돼? 내가 기분이 나쁘다잖아."


결국 궤도가 반복된 대화가 양측의 교차점 없이 끊어졌다.

나는 엄마가 기분이 나쁜 원인을 알지만 그 원인을 해소해줄 마음이 없었고, 엄마도 내 등을 떠밀지 않을 마음이 없었다. 그러니 이런 협상은 결렬 밖엔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젠 그러려니 하게 되었으나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면 나도 그러려니 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조금 더 나중에 글로 쓰게 될 것 같다. 내게 아주아주 중요한 이야기니까.)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내는 내 엄마를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는 편인데 이번 사건에는 정말로 놀란 듯 보였다. 딸이라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상하지만, 딸 대신 아들에게 그런 부엌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사고의 흐름은 정말로 이해할 방법이 없다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의 사고방식을 따라가는 것은 가능했다. 왜냐하면 나는 엄마 자식이니까.


사실 엄마 의식 속에는 아들 선호 사상까지는 없다. 

우리 엄마는 기본적으로 아들이라고 더 잘해주는 사람은 아니다. 고기 한 점이라도 아들이 더 먹으라거나 부엌일은 남자니까 하지 말라거나 그런 개념은 안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엄마는 도통 사람에게 다정할 줄 모르는 사람인데 우리 둘에게 공평하게 다정치 못하다. 

그래서 딱히 아들 선호에서 흘러나온 발언이라고는 보기 힘들다고 추측했다.


그저 나의 엄마는 정말로 전통적인 가족 계보를 잇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외국영화에 가끔 나오는 그런 패밀리 트리를 그리는 혈연과 혼인으로 계속 뻗어나갈 가족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서 각자 전통적인 성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주길 바라는 사람일 뿐이다.


굳이 그 욕구에 이름을 붙여보자면 아주아주 보수적이라고 표현하면 비슷하려나 싶다.

나아가기보단 지키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 현실 속에서 본인이 빼앗기거나 괴로웠더라도 그 또한 지켜 내다 보면 그 안에서 무언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 


자신이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그 좋아하던 공부를 통해 나아갈 길을 다 놓아버리게 만든 현실을 미워하기보단 응당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믿으며 그 안에서 굳어버린 사람. 그런 사람이 나의 엄마니까.


그러니 지금 내 엄마가 얼마나 불안한 상태일지 나는 맑은 물을 들여다보듯 알 수 있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전통적인 역할을 수행하길 바라는데 딸이 완벽하게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무심결에 느끼고 있을테니까. 안돼, 가지 마, 그 길은 내가 모르는 길이란 말이야, 그런 공포에 자꾸 소스라치게 놀라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을 것이다. 보수성이란 그런 것이라고 내 나름은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엄마 딸은 엄마가 원하는 삶으로 살기엔 글렀다.

엄마가 원하는 딸은 될 수가 없고, 될 생각도 없으니까.

그런 고집 센 나를 내심 느끼고서 비명처럼 터져 나온 말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기분 나쁘다고! 내가 왜 딸 놔두고 아들한테 요리 얘기나 하고 있는 거야!"


그 말속 솔직한 마음을 꺼내 해석해보면 이렇게 읽을 수 있다.


"왜 내 딸은 나처럼 살려고 하지 않지? 왜 내 인생을 부정하고 내가 모르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 왜 결혼을 하지 않는 거야? 왜 엄마가 되려고 하지 않는 거야? 그럼 내 인생은 뭐가 돼? 난 엄마가 되는 것 외에 선택지 같은 건 하나도 없었는데 내 딸이 다른 선택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 너로 인해 다시 삶을 산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으로 가는 널 보면 두려워.


결국 내 삶이 아무 가치가 없었다는 증명이 될까 봐 두려워. 그러니까 너도 나처럼 살아, 제발 나처럼 살아줘."


그런 엄마의 외침을 나는 읽었다.

그리고 엄마가 읽지 못할 말을 겨우 마음속으로만 웅얼거렸다.


아냐, 엄마.

나는 엄마가 되지는 못할 삶을 살고 있어. 남편은 만들지 않아. 

엄마 딸한테는 아내가 있고 심지어 지금은 외벌이를 하는 중인 가장으로 살고 있어.

엄마에게 사위 흉을 보면서 함께 커피를 홀짝일 딸이 돼주지 못한 건 나도 무척 유감으로 생각해.

내가 행복하다고 엄마의 삶이 무의미한 건 아닐 거야. 언젠가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좋겠지만.


엄마가 잠긴 문을 열 날이 올까, 나는 가끔 그게 궁금하기도 해.


영영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주진 않겠지.

끊임없이 길을 벗어나며 엄마와 거리를 벌려가는 딸을 저주하면서 생의 마지막까지 한탄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좀 미안하지만 그래도 나의 진짜 삶을 끝까지 엄마에게 비밀로 하는 것이 나름의 배려라는 사실은 알고 살아가 주면 좋겠는데. 


난 정말 진심으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비밀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엄마를 항상 마주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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