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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승무원 시절 제주공항에서 우동 한 그릇

우동을 먹다가 그날이 떠올랐다.


'띠띠띠 띠띠띠'


 아침부터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알람 소리에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알람을 껐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잠시 멍하게 앉아있다. 

다리가 무겁고 몸을 일으킬 수 없는 걸 보니 어제 장거리 비행을 다녀온 것이 분명하다.


어제 나는 로마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침 9시 서울에 있고, 3시간 뒤엔 제주에 있을 것이다. 로마 비행 후 주어진 데이 오프에 휴가까지 함께 더해져 4일을 한국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것도 금, 토, 일 포함이라니 더 이상 좋을 순 없었다. 날씨 좋은 여름이라 남편 고향인 제주에 놀러 가기로 했다. 남편과 아이는 일찌감치 목요일 저녁에 제주에 내려갔고, 나 혼자 짐을 챙겨 제주에 내려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어제는 로마에 오늘은 제주에.
여행이 일상인 삶이라니'


믿기지 않는 현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내심 좋기는 했지만 아직 여행의 여독이 풀리기 전에 또 다른 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서는 것만으로도 몸에 피로감이 찾아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피로를 녹여버리고, 가볍게 짐을 챙겨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여행으로 남편과 아이 없이 공항에 온건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주어진 자유부인의 시간을 마음껏 누렸다. 공항을 천천히 둘러보다 분식집이 눈에 보였다. 안 그래도 아침을 못 먹고 공항으로 출발했는데 잘됐다고 생각했다. 메뉴판을 보니 한 가지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우동'이라는 메뉴.

망설임 없이 우동 한 그릇을 시켰다.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데 음식을 나왔다는 걸 알리는 진동벨이 울렸다. 음식을 받으러 가니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맑은 국물에 우동이 나와있었다. 조심히 자리로 가져와 사진부터 찍었다. 경건하게 수저와 젓가락을 들었다. 어묵과 함께 우동 면발을 함께 올려먹었다. 순간 입안 가득 행복감이 찾아왔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다 문득 그날이 생각이 났다. 11년 전 그날이. 


막내 승무원 시절.

나는 제주 비행을 갔던 적이 있다.

제주 비행을 와서 제주에서 하룻밤 을 자고 다음날 제주-서울. 서울-제주, 제주-서울을 하면 끝이 나는 스케줄이 배정되어있었다. 보통 B737이라는 소형 비행기는 앞쪽 조종석이 좁다 보니 비행이 끝나고 혹시 다음 비행까지 시간이 여유가 있으면 기장님들이 잠시 나왔다 다시 들어가신다. 12년 동안 B737 기종을 타며 많은 기장님을 만났다. 초콜릿을 사주시는 기장님, 커피를 사주시는 기장님, 비행이 끝나면 정말 수고 많았다고 인사해주시는 기장님 등등 기종의 특성상 정이 많은 기장님들을 만났다.


11년 전 그날도 B737 기종을 타고 비행하는 날이었다. 제주에서 서울 가기 전 시간이 조금 남은 상황이었다. 딱 봐도 막내 티가 나는 나와 내 윗 선배에게 아버지같이 나이가 지긋한 기장님이 질문하셨다.


"여기 공항에 우동 맛집 있는데 먹으러 갈래요?"


솔깃한 표정으로 기장님을 쳐다보니, 함께 간 팀장님은 본인은 괜찮다며 다녀오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렇게 기장님을 따라서 공항 안에 있는 우동집으로 향했다. 한 줄로 주르륵 앉아서 먹는 곳이었는데, 시간이 많지는 않았기에 빠르게 먹어야 했다. 뽀얀 김을 내는 맑은 국물에 우동이 나왔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선명히 머릿속에 남아있다. 마치 고등학생 시절 10분 쉬는 시간에 매점에 달려가 후루룩 라면을 먹는 것 같은 스릴 넘치면서 포만감이 느껴지는 느낌이라면 적절한 비유인 것 같. 내 옆에서 맛있게 우동을 드시던 기장님의 얼굴과 선배의 얼굴이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이 참 따뜻하게 기억이 나는 건 승객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셔야 한다는 같은 사명감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따뜻한 동료애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승무원에게 '음식'이란 무엇일까?

잠시 육아 휴직으로 쉬고 있는 지금.

승무원에게 음식은 전 세계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가장 강력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선배에게 승무원과 결혼해서 임신을 하게 되면 남편들이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방콕의 커리크랩이 먹고 싶어."

"오클랜드의 홍합이 먹고 싶어."


임신 후 먹고 싶은 음식이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 나가야지만 먹을 수 있는 것이기에 남편들이 힘들어한다는 말이었다. 나 또한 임신 중 방콕의 커리크랩이 너무 먹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직 비행기를 타도되는 안정기가 아니라서 이태원 타이 레스토랑을 겨우 찾아 커리크랩을 시켜먹고도 방콕의 그 맛이 아니라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사람에게 먹는 즐거움이 크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안다. 불규칙적인 식사시간과 시간이 날 때 바짝 먹어야 하는 승무원의 직업에 특성상 식탐이 생기에 되는데 전 세계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 부분이 위로가 되었다. 승무원의 직업의 특성상 음식마다 추억이 쌓인다는 장점이 좋았다. 파리에서의 남편과 함께 먹은 특유의 고소한 카페라테와 곁들인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크로와상과 하와이에서 먹은 육즙 가득 스테이크와 봉지에 담긴 다양한 해산물에 소스를 넣어 흔들어서 먹었던 이색적인 음식까지, 아침 일찍 일어나 이틀 연속 먹은 에그 베네딕트. 뉴욕 섹스 엔더 시티에 나왔던 정말로 쫀득하고 달달한 컵케이크와 브런치 그리고 오늘을 회상하게 된 공항에서 만난 우동까지.


케리어를 끌어도 어색해서 여기저기 부닥치고, 선배님 꽁무니를 쫓아다녔던 막내 승무원 시절.


제주공항에서
기장님의 추천으로
우동 한 그릇을
 허겁지겁 맛있게 먹던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전 세계의 음식들을
만나게 되는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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