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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고 하자 남편이 나에게 건넨 말

평생 잊지 못할 그 순간


인생엔 지 못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그날 밤이 그랬다.


오빠에게 전해 들었다.

"아버지가 폐암이셔."

라는 말을.

발끝으로 툭하고 심장이 떨어져 버린 듯한 느낌.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어떤 하루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처절하게 슬픔에 잠식되어 있었다.


저녁이 되고 남편이 퇴근을 했다.

남편이 샤워를 마치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남편한테 내가 들을 슬픈 소식을 전했다.

"아빠가 폐암에 걸리셨데."

라고 말하자 남편은 놀란 얼굴을 감추며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우리 부모님들
아프실 나이가 되셨잖아.
어떤 분이 먼저 아프시냐의 차이지
나중엔 다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니깐.
아버지 나으실 수 있어.
걱정 마.
아버지 우리가 잘 모시자."


그날 밤.

남편의 말 한마디 한마디와 그 표정과 나를 안고 다독여주던 그 온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양말을 뒤집어서 빨래통에 넣고, 치약을 반대로 짜는 등의 불만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말에 다 사라져 버렸다. 이 사람 옆에서는 평생 어떤 힘든 일이 찾아와도 함께 잘 견뎌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은 자신이 한 말대로 아프셨던 나의 아버지를 정말 잘 모셨다. 폐암 1기 때부터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버지와 많은 추억을 만들도록 도와주었다.


어느 날은 아버지께서 드시고 싶어 하시던 먼 곳에 있는 청국장 맛집을 찾아갔다. 아버지께서 편하게 드실 수 있도록 빨리 식사를 한 후  살 딸아이를 데리고 식당 근처에서 놀아주고, 식사가 끝나고는 아버지와 함께 딸아이와 손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했다.


또 다른 어느 날은 아버지 건강하실 때 친정가족들과 여행 다녀오라고 딸아이는 자신이 보겠다 말해주어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함께 로마 3박 4일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로마에서 스냅사진도 꼭 찍으라는 당신 말에 스냅을 예약했다. 아침 8시 콜로세움에서 시작된 사진 촬영은 프로 로마노를 거쳐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끝이 났다. 콜로세움에서 손 잡고 걷는 모습. 프로 로마노를 배경으로 웃으면 찍은 모습 등등 많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다음날은 포지타노 투어를 예약했다. 날씨 좋은 날 가게 된 투어. 빛나는 포지타노 절경을 보며 아버지는 감탄하셨다.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시원한 레몬 슬러쉬를 마시며 여유롭게 포지타노 마음을 구경했다. 보트도 탑승했는데, 포지타노 배경으로 보트에서 환하게 웃으시던 아버지의 얼굴을 평생 내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 돌잔치 때 아버지는 기타를 치시고, 나는 피아노를 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르며 가족들과 아이의 첫 생일을 축하를 해주었다.

내 남편은 전문 카메라맨처럼 열심히 아버지의 모습과 가족들의 모습을 촬영해 주었다. 영상 속엔 쑥스럽게 웃으시며 기타를 치시는 그날의 아버지의 모습이 잘 담겨있었다.


아버지와 동행해서 병원 검진을 받으러 다녀온 날은 어린 딸을 목욕시키고, 아버지 모시고 검진 다녀오느라 고생했다는 따뜻한 말을 건넨 사람.

어두웠던 내 인생의 시간에 주저앉고 싶을 때 남편은 환한 등대처럼 나를 비추며 일으켜 주었다.


아버지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시던 날.

남편은 아버지를 간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을 잘 정리해드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을 나에게 건넸다. 아버지가 호스피스 병동에 가신 것도 처음이고, 여러모로 정신없던 나를 남편은 단호한 말로 잡아주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겨져 있는 아버지께 차마 물어보기 힘들었던 질문들을 두 손 꼭 쥐고 여쭤보았다. 자식이 어렵게 어렵게 건넨 질문에 내 아버지는 나와 함께 영정 사진을 고르시고, 장지를 고르시고, 가족들에게 남기 유언을 녹음하셨다.

하나밖에 없는 손녀에게 전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사랑의 말을 사위에게 전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나에게 전하신 마지막 말을


"사위 덕분에 도움 많이 받고 가,
역시 대한민국 일등 신랑감이야.
 정말 고마워."


마지막 유언을 말씀하셨던 그날 새벽.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를 때, 옆에서 손 꼭 잡고 나 대신 더 많이 울어주었던 남편.

혹시 떨어진 음식은 없나 꼼꼼히 챙기고, 이모들에게도 잘 부탁드린다고 음료수도 챙겨드리며 내가 정신없어 챙기지 못한 부분까지 살뜰히 챙겼다. 척분들도 나를 잘 챙겨주고, 예의 바른 남편의 모습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수의를 보며, 내가 뚝뚝 눈물을 떨구자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여주며 내 곁을 지켜준 사람.

덕분에 아버지 장례를 잘 치르고, 햇볕 드는 좋은 곳에 아버지를 모실 수 있었다.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버지의 치료를 함께 다니며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내 옆을 지켜준 사람이 내 남편이라 참 감사했다.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고 하자
남편이 나에게 건넨 말과 행동은
내 인생에 잊지 못한 순간들이 되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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