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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이 추억을 간직하는 법.

사진첩에 잊지 못할 추억들이 쌓이는 일상

승무원이 되고,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더욱 많아졌다. 한 달의 반 이상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머무는 직업이기에, 눈과 마음에 전 세계를 담고 아쉬운 마음에 카메라 셔터를 눌러 그 순간을 간직한다.


'찰칵'

소리와 함께 잊고 싶지 않은 지금을 추억으로 보낸다. 눈앞에 찬란한 그 어떤 순간도 그 순간이 지나면 과거가 돼버린다는 것.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언젠가의 그날을 기록해 추억의 매개체가 되게 하는 것.


나는 어려서부터 추억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주말이면 여유롭게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타, 그간 찍은 앨범을 보거나, 일기장들을 꺼내 읽곤 했다.

그 일기장엔 군가와 사랑에 빠진 시절 잠에서 일어나 설레어서 잠 못 자던 새벽녘에 갑지만 기 좋았던 공기의 느낌과
그토록 원하던 향수를 아르바이트비를 벌어서 산 후 자기 전 그 향수를 잠옷에 뿌려 행복하게 잠든 날의 기록도 적혀있었다.

소소하지만 그 모든 시절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다.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내가
좌절에 울고 있던 내가
다시 일어나 다시 열정적으로 꿈을 좇던 내가
승무원이 되어 행복한 내가
그 모든 걸 겪고, 나라는 사람으로, 한 남자의 아내로,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이 모든 추억을 머금고 자란 아이가
행복하게 비행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나의 지나온 모든 인생의 여정을 잘 살아와준 나 자신이 애틋하고, 대견하다.
힘든 시절 잘 묵묵히 잘 견뎌내어 주고, 나로 잘 살아와줘서 고맙다. 이야기해 주고 싶다.


비행 중 승무원이 쉴 수 있는 벙커에서, 힘든 비행을 마치고 푹 자고 일어난 호텔 침대에 누워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본다.

사진 속 기록엔 며칠 전까지 로마 포지타노에서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레몬 맥주를 마셨는데, 다음 사진은 제주도에서 제주의 바다를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보고 있다.

다낭에 도착해 콩 카페에서 시원한 코코넛 커피와, 맛있는 쌀국수를 먹고, 마시지를 받은 날의 사진과 LA 도착해서 먹는 맛있는 고기와 미주 슈퍼에서 산 과일과 간식들 다음날 호텔 앞 쇼핑몰에서 산 아이에게 줄 장난감과 달달한 컵케이크 사진들이 담겨있다.


나는 유난히 반짝이게 눈부신 LA 햇빛을 좋아한다.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

시원한 바람이 볼에 스치는 카페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커피 한잔을 마신다. 미드를 보는 듯이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외국사람들과 내가 있는 곳의 고층빌딩과 그 사이로 내리쬐는 따뜻하고 기분 좋은 햇살을 느낀다.

다이어리를 피고, 좋아하는 노래를 귀로 들으며 펜으로 기억하고 싶은 지금 이 순간들을 기록한다.


사진첩과 다이어리를 열어보면 전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자의 삶이 가끔은 믿기지 않곤 한다.
찬란하고 행복했던 추억들이 가득기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른 살 후반의 내 나이가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나로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참 좋다


승무원이 되어보니,

내 인생은 잊지 못할 추억들로 가득해졌다.

전 세계의 모든 곳을 눈과 귀와 가슴에 담고 오감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사진과 일기장에 그날의 기록을 담아 차곡차곡 추억의 상자에 담는다.


이 방법을 통해 코로나로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그리워지면 내 안에 있는 추억상자에서 그리운 곳의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면 그날의 기억이 선명해져 또다시 웃게 되는 것.

그리고 좋은 날이 와서 다시 전 세계의 모든 나라를 만날 때 또다시 온 마음 다해 그곳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
승무원인 내가
추억을 간직하는 법이다.





*이미지 출처: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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