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비행을 하며 팀이 된 사람과 맞지 않아 고민했던 적이 있다. 비행의 특성상 1년 동안 15명 정도의 사람들이 한 팀이 되어 운영이 되는데, 동승률이 많을 때는 1년 동안 가족보다 자주 보는 사이가 된다. 함께 비행하고, 해외 스테이션에 나가서도 함께 생활해야 하는 사이.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건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아버지와의 화상통화에서 상황을 말씀드렸고,
그때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을 통해 고민하던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내 스승이다.’
12년간 비행을 했다.
좋은 분들만 만나서 비행을 했다면 정말 감사했겠지만, 그렇지 않은 비행도 많았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또라이 질량 보존 법칙’을 보며, 나도 모르게 공감이 되어 피식 웃었다. 내가 일하는 회사에 또라이가 있어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또 다른 또라이가 존재한다는 사실. 즉 어딜 가도 또라이는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는 유머였다.
사실 여기서는 또라이로 표현을 했지만, 내 견해로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늘 직장에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래서 난 늘 내가 받는 월급 안에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원만하게 지내며 비행을 해내는 것에 대한 비용이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12년을 비행을 했지만, 나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꽤 많이 비행을 했었다. 잘못하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혼내는 선배, 인신공격하는 사무장님, 기가 센 후배 등등 내가 갓 입사할 때 팀에 나를 괴롭히는 선배가 있었는데, 한 번은 너무 억울해서 승무원 휴식시간에 잠을 청하러 간 *벙커에서 잠이 오지 않아 선배에게 한소리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우리 집 귀한 딸이에요. 제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고 고치겠지만, 잘못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가려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음 같아선 선배에게 속 시원히 말하고 싶었지만, 회사문화상이 말은 마음속으로만 외치고 결국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그 선배는 흔히 말하는 ‘또라이’에 속하는 부류로 나뿐만 아니라 선배 그리고 사무장님들에게도 대드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 선배는 중간에 팀에서 나가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나는 선배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비행을 하며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어떻게 저런 인성을 가진 사람이 팀장님이 되었을까 하는 사람들도 만나곤 한다. 사실 이런 이상한 팀장님의 팀에 들어가 소위 말해 찍히게 되면 결국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승무원들도 있고, 결혼을 한 승무원이라면 산휴를 낸다. 과거의 갓 입사할 때의 나는 이런 분들을 만나면 몰래 화장실에서 울고 견디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 달관의 자세가 찾아왔다. 이렇게 인격적으로 덜 성장한 ‘어른 아이’들을 만나게 될 때면 마음에 드는 생각이 있다. '안타깝다.’라는 생각.
사람은 입을 통해 말을 하지만 그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고, 곧 그 말이 그 사람이기에, 겉모습만 어른으로 자란 사람들을 보면 참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다른 사람을 인신공격하거나, 자신이 잘못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행동을 통해 내가 그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고 나타내는 것이기에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다시금 다짐한다. 나는 저 사람처럼 되지 않아야겠다고
언젠가 책에서 본
‘그 사람이 나를 오해한다고 해서 나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
라는 말은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이상한 사람이 나를 오해한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은 변함이 없기에 이 말이 나에겐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이젠 누군가 내가 잘못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면 웃으며 나의 책임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이상한 사람과 비행을 해도 화가 나지 않는다. 현명하게 피하는 법을 배웠고, 그 사람과 함께 일하는 상황이 생기면 나를 보호하며 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연륜이 생긴 지금의 내가 참 좋다.
가끔은 후배인데 선배에게 함부로대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몇 천명의 승무원들이 근무하다 보니 평범하지 않는 사람과 일할 때도 있는데, 그럼 나는 또 아버지가 말씀해 주신 말씀을 생각한다.
‘나에게 가르침을 주러 온 스승이구나.’
이런 후배를 만날 때면팀장님 부팀장님 선배님과는 또 다른 케이스이기에 이 또한 지나고 나면 어려운 후배와도 잘 지내는 법을 배우게 되겠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책에서 읽어 알려주신 또 하나의 가르침을떠올린다,
바로 ‘호오포노포노’다.
하와이에서 전해지는 자신을 치유하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문득 누군가 때문에 화가 나려고 할 때 다음과 같은 말을 마음속으로 되 내이면 된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하게 되면 나의 내면의 상태를 ‘무’로 돌아가게 해서 나 자신을 치유하는 상태를 만들어 준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의 평화인 것을 알기에, 그렇게 몇 번을되뇌고 그 사람을 대하니 진심으로 우호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전보다 나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내 인생에 찾아온 많은 스승들을 만나며 더욱 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스승들을 만나게 됨으로써 가장 좋은 점은 정말 좋은 사람들과 비행하게 되었을 때, 진심으로 감사하며 비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운이 좋게도 좋지 않은 분들보다 배울 점이 많은 분들과 더 많이 비행을 했었다. 이런 귀한 분들과 비행하는 날이면 눈을 크게 뜨고 좋은 점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내가 동경했던 선배처럼 되기 위해 노력했고, 어느 순간 내가 동경한 선배처럼 성장했을 때, 내가 동경했던 부팀장님처럼 되기 위해 노력했고, 어느 순간 내가 동경한 부팀장님과 같이 그 역할을 잘 해낼 때의 가슴 벅참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언젠가 우연히 보았던 방송에서 가수 이효리가 한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어느 날 이효리는 이상순과 나무 의자를 만들고 있었다고 한다. 이상순이 나무 의자의 밑 부분을 열심히 다듬고 있자 이효리가 여긴 안 보이는 부분인데 누가 알겠냐며 물었고, 이상순은 내가 알잖아라고 대답했다고 한다고 한다. 남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내가 맡은 부분을 열심히 해나간다는 것이 멋지게 보였다. 남들이 몰라도 내가 나 자신이 기특하게 보이는 순간이 많을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 또한 내가 사랑하는 이 회사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서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노력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말씀대로 비행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내 스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