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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휴양 스케줄을 만나다.(1)

한 달 동안 부산, 발리, 괌, 하와이를 가다.

코로나가 없었던 2년 전 6월에 어느 날.

내 손에는 선물과 같은 7월 휴향 스케줄이 놓였다.


회사에서 스케줄이 공지된 날, 눈이 반짝였다.

보기만 해도 설레는 스테이션들이 적혀있었다.



부산, 발리, 괌, 하와이
7월 휴양스케줄을 만나다.


7월이기도 했고, 아기를 낳고 갓 복직한 나에게 주워진 이번 달 스케줄은 여름휴가와도 같았다.

각기 다른 곳에 바다를 두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설레었다.


그렇게 7월에 첫 비행 부산 스케줄이 시작됐다.

오랜만에 국내선 1박 2일 레이오버 스케줄이 나왔다. 국제선 승무원은 국내선 스케줄이 적게 나오기 때문에 오랜만에 나온 국내선 스케줄에 신이 났다. 더욱 좋았던 건 부산에 오후 도착 후 다음날 오후 비행이 잡혀있었기 때문이었다. 픽업 시간 전까지는  내 자유 시간이기에 나만의 스케줄을 짰다.

부산에 도착하면 체류한 시간만큼 식사쿠폰이 나오는데, 이번 비행엔 석식, 조식, 중식 쿠폰이 지급되었다. 석식 식사쿠폰으로 치킨을 시켰고, 조식 쿠폰으로는 아침에 먹을 빵과 커피를 픽업했다. 역시 랜딩 후 치킨은 옳았다.


다음날 아침

전날 맞춘 알람이 울렸고, 나는 호텔 같은 건물에 있는 영화관으로 향했다.

조조 영화표를 사고, 작은 사이즈 카라멜 과 콜라를 픽업서 영화관으로 향했다.

아이 낳고 2년만에 먹는 영화관 카라멜 팝콘


아이를 낳고, 2년 만의 영화를 보는 시간은 만 같았다. 오랜만에 듣는 영화관 사운드에 내 귀는 벅찼고, 행복했다.

영화가 끝나고 호텔 근처 유명한 밀면 집으로 향했. 매콤한 밀면 한 그릇을 뚝딱 먹고, 소화시킬 겸 부산 바다로 걸어갔다. 안개가 자욱한 하얀색 파도와 갈매기들이 나를 반겼다.

이렇게 짧지만 알찼던 부산에서의 힐링 시간을 마치고, 힘내서 부산 비행에 임했다.


두 번째, 발리 비행이 시작됐다.

발리 비행에 앞서 승객들이 요청한 특별식의 개수가 많았고, 완전 만석 비행에 유아 동반 승들도 많았다.

그리고 하필 공항에서 먹은 점심 체했다.

최악의 컨디션에서 시작된 비행.


하지만 승객들 앞에서는 티를 낼 수 없으니, 소화제 한 알을 먹고 맡은 업무를 해나갔다.

승무원의 직업의 특성상 자신이 맡아야 하는 임무가 있기에, 갑자기 아픈 상황이 발생하면 다른 승무원이 내 업무를 대신해야 하기 때문에 동료 승무원의 업무가 과중되므로 컨디션 관리가 아주 중요하다.


오늘따라 기류가 좋지 않아 비행기는 위아래로 흔들리고, 구토하는 아이들도 많아 여기저기 달려가 도움을 제공했다. 나 또한 속이 좋지 않았지만, 잘 참고 비행에 임했고, 발리의 중거리가 마치 애틀랜타같이 멀게만 느껴졌다.

발리 도착 10분 전, 놓친 부분은 없는지, 아픈 승객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안전 점검을 하고  점프 시트에 앉았다.

점프 시트 아래로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느낌.

드디어 발리 도착 후 항공기 문이 열리고, 습한 공기가 비행기 안으로 들어왔다.

여행의 설렘이 담뿍 느껴지는 승객들에게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라며 밝은 미소로 승객들에게 하기 인사를 했다.

정말 힘든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숙소에 오자마자 유니폼만 벗고 기절해버렸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도 컨디션이 괜찮아졌다.

발리의 눈부신 햇살과 새가 지저귀는 아침, 발리의 특유의 노래가 호텔 로비에 퍼졌다.

아침 뷔페에 가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원피스를 걸치고 수건과 한 권을 들고 호텔 수영장으로 향했다.

음료를 시키고, 광합성을 하며 책을 읽었다.

선선한 바람이 좋았고, 깃발은 나풀거렸다.

내가 사랑하는 발리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 졌다.

해가 지기 전 호텔 앞바다로 향했다.

눈앞에는 남편과 함께 왔던 쿠타 비치가 펼쳐졌다.

모래사장의 모래를 고았고, 한국보다 바다 색깔은 조금 더 어두웠으며, 파도는 더 높았다.

해변에서 내가 좋아하는 갓 구운 옥수수를 사서 한입 먹으며 여유롭게 산책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던 상황에서 바쁘게 강도 높게 비행했던 어제가 조금은 보상받은 기분이 들었다.


발리의 바다

발리에 어둠이 내리고, 팀 언니의 소개로 멋진 곳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팀원 5명이 갔는데, 식사는 10개.

맥주 5개. 추가로 음식과 맥주가 더 나왔다.

승무원들은 마른 것에 비해 정말 잘 먹는다. 비행기에서도 여유 있게 식사를 하기보다는 겔리에서 바쁘게 교대로 식사를 해야 하고, 비행이 시작되면 업무를 우선적으로 해야 하기에 식탐이 생긴다.

내가 갓 회사에 입사했을 때 공감했던 만화가 '승무원들은 모이면 먹고, 흩어지면 잔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맛있는 발리 음식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힐링이 되기 충분했다.

이렇게 또 에너지를 채우고, 한국에 돌아갈 채비를 한다.


돌아가는 비행도 만석 비행에, 많은 개수의 특별식.

그리고 동남아 인바운드 특성상 아픈 승객들이 있을 수 있기에 긴장하고 비행에 임한다.

급체로 쓰러지는 승객들도 종종 있고, 두통을 호소하는 승객, 감기에 걸린 승객들도 있다.


비행기 문이 닫히는 순간.

우리가 그분들은 책임지고 한국까지 모시고 가야 하기에 적절한 약과 따뜻한 차를 드리고 컨디션을 살핀다.

한국 도착 전 식사 서비스가 있기에 날을 새서 푸석해진 화장을 고치고, 잘 다려진 깨끗한 앞치마를 입는다. 잠에서 깬 승객들에게 식사 서비스부터 차 커피 서비스 나가고, 다 드신 식사를 회수한다.

승객들은 잠에서 깨는 시간, 우리는 시차로 졸음이 밀려온다. 마지막까지 정신을 차리고, 헤드폰을 회수하고, 특별 승객들 인계를 마친다. 안전 체크를 하고, 그렇게 비행기는 어느새 한국에 도착한다.

"수고 많았어요."

라고 인사를 건네는 승객들의 따뜻한 말에 피로가 사라진다.


항공기 창문으로 인천 국제공항이 두 눈에 들어온다. 어제 본 발리의 바다가 꿈같이 느껴진다.

강도 높은 발리 비행에 내 몸은 녹초가 되었다.

앞치마와 가디건 파우치, 장갑을 챙기고, 구두를 갈아 신는다. 케리어를 꺼내고, 디브리핑을 마친다.

게이트까지 걸어가는 다리에는 누가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아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관신고서를 제출하고 게이트를 통과한다.


드디어 한국.

누군가를 마중 나온 반가운 표정의 인파들을 지나쳐, 자취하는 팀원몇 명과 리무진 버스 시을 기다리며, 그동안 못 먹었던 매콤한 김치찜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잠을 깨운다.


동남아 인바운드 비행은 특성상 날을 새야 하기에, 리무진을 타면 진동으로 집 도착 예상시간 5분 전에 알람을 맞춘다. 깜박 잠이 들으면 우리 집 정거장을 지나는 불상사를 겪을 수 있기에.

집에 도착하면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친정 엄마가 아이를 뵈 주시는 동안, 암막 커튼을 닫고, 잠을 청한다.

푹 자고 일어나니 시간은 어느새 오후 3시.

그동안 보고 싶었던 남편과 아이와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다시 체력을 회복한다.



이틀 뒤 나는 다시 휴향 스케줄인
괌으로 떠난다.







*이미지 출처: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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