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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작가

전 세계 어디서든 글을 쓰는 일상이 펼쳐진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승무원과 작가는 꽤 괜찮은 조합이라 생각한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해외에 나가서 보내는 체류시간이 길다. 다른 직업에 비해 비행을 할 때 일하는 업무강도는 지만, 생각보다 많은 휴게시간이 보장이 된다.


갓 입사를 했을 때는 선배들과 세계 여러 나라를 구경하느라 늘 바빴었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고 내 위에 선배들보다 내 밑에 후배들이 많아지자 사실 상 투어를 나가는 횟수도 줄어들게 되었다. 이미 투어를 했던 곳이기도 했고, 사실 투어를 간다는 건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해야지 즐거운 것인데, 내가 어울려야 하는 그룹은 어느새 시니어 그룹이 되었다. 시니어가 된 내가 주니어 그룹에 조인해 투어를 같이 가는 것도 그들에겐 부담인걸 잘 알고, 열정적으로 투어를 하기에는 나와 함께 하는 그룹의 구성원들은 투어보다 비행 피곤함을 풀기 위해 호텔에 머무르는 것을 선호다. 그렇게 나 또한 호텔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비행을 시작한 지 1년 차에는 비행 그 자체를 배우기에도 바빴던 시절이었고, 그 후 2년 차 3년 차에는 상위 클래스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느라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비행이라는 일이 익숙해지고 매너리즘이 찾아올 때쯤 나는 목표했던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사실 나는 2년제 항공과를 졸업했기에, 입사하는 순간부터 비행과 학업을 병행했었다. 4년제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세계 각 나라에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았다.

돌이켜 보면 나의 젊은 날들은 꽤나 바빴던 것 같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비행기에서 주워진 모든 역할을 능숙하게 하게 될 때쯤에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비행이라는 업무 자체가 업무 강도가 기 때문에 호텔에 있는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영상을 보거나, 잠을 청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5년 10년이 지나고 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 허탈찾아온다. 주변의 많은 시니어 선배님들을 만나면 듣던 이야기가

“비행만 했는데, 이렇게 나이 먹었어.”

라는 말이었다.


한 달안에 장거리 비행  2개, 중거리 비행 3개, 단거리 비행 5개 정도를 스케줄로 배정받곤 하는데, 비행을 하며 사라지는 시간들과 남은 한국에 있는 8일 정도의 시간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고, 휴식을 취하고, 운동을 하면 그 마저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정신 차리고 시간 관리를 하지 않으면, 비행만 하며 나이 먹기 딱 좋은 직업.


물론 비행만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의미는 있지만, 13년을 비행을 하며 곁에서 선배님들이 건네는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후회의 말이 많았다. 비행하며 공부도 병행해서 학위라도 취득했을 걸, 다른 어학이라도 공부했을 걸, 취미라도 가질 걸 등등.        

그러기에 혹시 승무원을 꿈꾸는 분들께 내가 추천하는 팁이라고 한다면, 승무원이 된 후 비행을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함께 하라고 말하고 싶다. 무원이라는 직업을 택하게 되면 인생의 시간이 정말 빨리 가기에.


아무도 없는 호텔 로비에서 글 쓰는 시간.
조용한 호텔에서 보내는 나만의 시간.

나는 감사하게도, 비행을 하며 틈틈이 글을 쓰곤 했었다. 사실 어려서부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언젠가 방송에서 작가들은 글을 쓸 때 집이 아닌 작업실, 호텔 등을 구해 글을 쓴다고 다. 집이란 곳은 삶에서의 일상들이 너무 많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에 집중해서 글을 쓰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글을 쓸 때 집에서 글을 쓰는 것보다 비행을 나와 조용한 호텔에서 커피를 한잔을 내리고, 글을 쓸 때가 더욱 집중이 잘되는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은 돈을 내고 호텔을 구해 글을 쓰는데, 이렇게 나는 회사에서 마련해준 호텔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가지고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나라를 만날 수 있는 나의 직업의 특성상  나라의 특색과 그곳에서 내가 느낌 감정들 또한 글에 담을 수 있다.



비행기서 만나는 귀여운 구름들

 과거 막연히 비행을 다니며 마주했던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매력들이, 글을 쓰게 되면서 오감을 통해 바라보니 그 매력은 배가 되었다. 무엇이든 추억하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사진이 주는 추억과는 다른 글로 남겨져있는 추억을 통해 그때 그 순간을 더욱 잘 그릴 수 있 더없이 좋다.     

  

13년을 비행을 하며, 많은 것들을 병행해 왔다.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다. 또한 꾸준히 운동한 덕분에 13년이 지나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비행을 하고 있다. 리고 매 비행 꾸준히 쓴 글들이 차곡차곡 모아져 있고, 그 기록들을 운이 좋게도 브런치 작가가 되어 소중한 420명의 구독자님들과 나누고 있다.


비행하며 많은 것들을 병행하기에 숨이 찰 정도로 벅찬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지나 돌이켜보니 나는 비행을 하며, 학위를 취득했고, 정성 들여 쓴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비행하며, 공부하고, 글을 썼던 순간순간들이 아쉬운 시간이 아닌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들로 기억된다.


괌 도착 후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

 비행 도착하고 푹 자고 일어난 아침.

편한 원피스에 슬리퍼를 신고 가벼운 가방에 노트북을 챙겨 호텔 로비에 위치한 카페로 내려갔다.


카페에 앉았다.

눈앞엔 괌의 바다가 있었다.

내리는 빗방울도 운치 있는 이곳.

습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분 좋아지는 여름 느낌이 들었다.


간단하게 아침 먹을 겸 커피 한잔과 파운드케이크를 주문했다.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노트북을 켜고 '승무원 작가'라는 글을 쓰고 있다.

조용한 카페 안

'타닥타닥 '

내가 좋아하는 타자 소리와 빗소리만 들리는 지금.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반짝이는 에펠탑이 빛나는 파리에서 글을 썼는데, 지금은 기분 좋아지는 여름 비가 내리는 괌에서 글을 쓰고 있다.

전 세계 어디서든 글을 쓰는 일상, 꿈같은 일상 속 나는 비행을 한다. 그리고 글을 쓴다.


나는
승무원 작가다.








*이미지 출처: 비행하고 글 쓰는 행복한 그녀

매거진의 이전글 글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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